둔기로 맞은 듯한 그날의 기억이 아물때 쯤 찾아 온 너의 얼굴은
그리움에 젖어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잠시 곁을 허락했던 나는
과거를 되감으며 그저 우리를 조망했다
한 방울의 감정도 너와 섞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늙어버린 나는
다행히도 피상적인 표정만 지을 수 있었고
감정의 블랙홀 속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잠시 당신을, 과거의 우리를 소모했다
관계는 공허했지만, 찰나의 즐거움을 남겼다
꾸덕하게 붙어있던 너와의 기억들은
나의 냉심에 얼어 붙어 깨어지고
이내 바스스 부서졌다
너와의 봄을 꽁꽁 얼려 한 줌 눈으로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쿨함을 넘어 서늘해지는 걸 늘 경계했지만
너와는 서늘을 넘어 시리고 싶었다
별 것 아니던 것이 별 것이 된 오늘
예정된 정리, 예견된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도,
아무리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들던 것이라도,
'쓸쓸한 바람이 마음에 스치운다'
생각하던 찰나
'후!' 불어버리면 그만인 눈만 쌓였네?
"우리는 찬 겨울에 딱 맞는 시간을 보냈구나.
너의 봄은 내가 아니니, 다시 젖어도 내게 오지 말아라.
난 널 얼릴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