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무안 7.
2년 전쯤 인가. 길을 따라가다 우연히 신월항에 닿은 적이 있었다. 낯 선 그곳은 낡은 것을 묵히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마른 바다 한 켠에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버티고 있는 폐선, 하루 종일 한 사람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어수선한 상점, 속이 훤하도록 칠이 벗겨진 간판, 헐렁한 속옷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며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사내... 처음 만난 그곳이 오래도록 봐온 곳처럼 편했다. 내가 안고 있는 낡음도 뾰족함도 부끄러움들도 편하게 부릴 수 있었다.
마주 보이는 고이도는 왠지 애처롭게 느껴졌다.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곳이었고 노을이 지고 있었으며 스스로는 어두워지면서 신월항을 물들인 탓이었다. 순간 발 디디고 서 있는 신월항이 꼭 나 같다고 속말을 중얼거렸다. 손에 닿아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로 인해 때때로 밝을 수 있었으니. 생각해보면 애처롭고 어두운 것들로 인해 내가 환해질 때가 있다.
고이도와 신월항 사이에는 바다가 흐르고 있었다. 마치 큰 강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그곳에서야 비로소 바다가 흐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첫선 같은 만남을 갖고 마음이 어지럽고 소란스러울 때 나는 조그맣고 낡은 그 항구에 머리를 기댄다.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의 언덕길을 넘어설 때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은 부러 차를 세우고 머물게 한다. 어릴 때로 돌아간 듯 안심이 되고 평온함을 준다. 왕복 2차선이라 하기에도 좁은 도로들이 사라질 듯 이어지는데 완만한 언덕과 활처럼 휘어진 밭들을 끌어안은 이유다. 그 휘어짐과 완만함에서 양파들이 연두 빛에서 노란빛으로 건너가고 쇠해지며 여물어 간다.
객지 생활을 하던 20대 초반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행 버스에 올랐다. 완행 버스답게 그림을 그리듯 느리게 이곳저곳을 들러 가던 참이었는데 어느 정류장에선가 엄마가 몇몇 아주머니들과 함께 버스에 탔다. 순간 나를 본 엄마가 약간 멈칫하는 듯 느껴졌다. 무안 어디쯤에선가 양파작업을 하고 작업복 그대로 버스를 탔던 터였다. 시커먼 얼굴, 그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던 어느 농약사의 촌스런 모자... 어쩌면 딸인 나에게 조차 당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반대로 나는 온전히 엄마를 반겼던 것일까. 지금도 가끔 질문처럼 떠오르는 장면중 하나이다. 양파는 한 때 나를 키운 엄마의 돈벌이 었고 나의 삶을 오래도록 환하게 비추는 엄마의 고단했고 애처로운 삶이었다.
얼마 전 다시 만난 신월항은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었고 덧입혀진 시멘트는 흩뿌려진 채 굳어 있었다. 그 곁 원래 낡아 있던 건물들은 더 낡아지고 낮아져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보던 중년의 사내도 보이지 않았다. 편했던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 같아 낯설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낡음이 사라진다는 것은 익숙함도 푸근함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어서 속내를 드러내기가 어렵다.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모든 새로운 것은 언젠가 낡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구수해진다는 것에 작은 위로를 삼는다. 그나마 항구와 고이도는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니 다행이다. 나 역시 신월항을 오래 바라볼 것이다. 엄마는 가셨지만 거기에 양파밭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