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무안 6
콧날 시큰한 얘기도 따듯해지는 곳. 훈련 경비행기가 오르내리는 무안공항과 드넓은 뻘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무안 낙지직판장에서 J와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낯선 곳의 자유로움이라니 마음이 먼저 취하기 시작했다. 낙지 탕탕이와 잘 마시지도 못한 소주도 한 병 호기롭게 시켜두고 시댁, 남편, 아이들 얘기가 추가 안주로 오르내렸다. 사춘기적 누가 누구를 좋아했었다는 얘기들까지 형형색색의 수다들이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였다. 그 많던 수다가 어디에 머물러 있었던 것일까? 마음의 무게가 쑤욱 내려간 것 같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저녁 준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멀고 길었던 육아와 이 집 저 집 건사를 모두 마치고 갔던 길을 돌아와 노을에 잠길 수 있는 것. 빛을 차단하는 허름한 블라인드가 점점 낮아지고 탕탕이 접시 위 낙지의 움직임도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내가 삼거리에서 통닭집 할 때 엄마(내 엄마)가 닭을 시키셨어. 동네 사람들 나들이 간다면서... 내가 니 친구니까, 딸 같으니까 일부러 팔아주셨던 거지. J의 목소리가 울컥거렸다. 처음 듣는 그녀의 얘기에 그랬었냐고 나도 울컥해졌다. 둘째를 엄마에게 맡길 때 기저귀며 옷이며 J의 티코에 쑤셔 넣다시피 싣고 갔던 일이 있었다. 그 일이 먼저인지 나중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주거니 받거니 살 수밖에 없는 우리네 생을 엄마는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서로의 엄마를 서로 엄마라 부르면서 엄마를 공유했고 이제 엄마들을 떠나보냈거나 노쇠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무게도 공유하고 있었다. 남성들이 서로의 어머니를 어머니로 부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장모와 사위, 딸과 친정엄마의 거리쯤이랄까.
더없이 부드럽고 담백한 연포탕 그리고 시원한 맛이 그녀와 나 사이, 오래된 이야기들 사이사이에서 따듯함을 부추기기도 하고 시원함으로 달래주기도 했다. 우리 엄마들에게는 이런 시간도 없었다고 이렇게 되돌아와 지는 석양을 바라볼 시간이 한 번도 없었다고 우리는 마음껏 엄마의 삶을 슬퍼하고 추앙했다. 그렇게 한없이 슬퍼져도 좋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반찬을 채워주는 따듯한 여주인이 있었다. 어쩌면 그 여주인도 엄마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가난했거나 스산했던 날들, 그날들을 지나 중년의 J는 이제 풍요롭고 뽀송뽀송한 삶을 살고 있다. 고맙고 감사하다. 그녀도 나에게 잘 살아줘서 고맙고 안쓰러웠다는 말을 두고 쓴다. 서로에게 안쓰러웠던 것, 서로에게 고마운 것. 그보다 더 잘 익은 관계가 있을까.
무안 뻘낙지를 품은 갯벌에 밀물이 밀려온다. 그 위 노을과 우리들의 오래된 얘기가 젖어들고 있다. J와 나는 맛깔스러운 젓갈처럼 오래오래 묵혀지고 소금 같은 눈물을 흩뿌리면서 붉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