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무안 5.
잎들이 붉음으로 건너가는 남천이 강가로 줄지어 있다. 그 길을 따라 완만한 곡선의 강이 흐른다. 영산강의 소리 없는 흐름, 나도 소리 없이 흐른다. 먼 곳에서는 태풍이 오고 있다는데 모든 준비가 끝난 듯 주변 풍경은 고요가 짙고 회색빛 하늘이 금방이라도 길을 막아설 것만 같다.
나주 영산포구에서 무안 몽탄포구 까지 34Km 영산강 강변도로는 소리없이 멈춤 없이 흐르고 싶은 사람들이 시작하는 길이다. 그러다 잠깐 차를 세우고 벚나무 아래 서 있기도, 정자에 앉아 요샛말로 강멍을 때리기도 좋은 길이다. 담양, 광주 먼 길을 흘러온 영산강은 나주, 함평, 무안을 흘러 목포 앞바다로 떠난다. 그 곁 825번 지방도로가 동행한다.
무안 봉산리는 함평 영흥리에서 ‘영산’을 받는다. 나도 두 손 공손히 '영산'을 받는다. 다시 오는 강물이지만 같은 강물은 아닌 것을 아는 듯 두견새가 울고 있다.
영산강의 속도는 얼마쯤일까. 저 묵직한 강물의 속도는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속도인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해본다. 제한 속도보다 속도를 낮추고 강물과 발걸음을 같이한다. ‘영산’과 내가 팔짱을 끼고 너울거리며 걷는다. 모처럼 저속인 날.
‘영산’과 나 사이에는 벼논이, 풀숲이, 자전거길이 문득문득 드나들다가 바짝 곁이기도 하다. 그러다 갑자기 끼어든 백일홍들. 쉬운 분홍도 아닌 것이 만만한 빨강도 아닌 것이 백일홍의 ‘홍’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 곁을 내어 줄 밖에. ‘영산’의 내‘홍’이 끝나길 바랄 뿐이다. 마치 산전수전 공중전을 치루며 긴 생을 살아가는 여느 두 사람의 생이다.
그러나 몽탄포구에서 길은 끝나고 말아 더 이상 흐를 수가 없다. 영산강도 이정표도 직진인데 막다른 길 위에서 한참 결별을 추슬러야만 했다. 모든 ‘홍’은 그리 쉽사리 끝나지 않는 것, 결국 ‘영산’을 놓치고 말았다.
선택지는 우회전과 좌회전이다. 다리를 건너면 강 곁으로 바짝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좌회전을 택한다. 그리고 나타난 농노로 습관처럼 들어서니 진입금지 경고들이 계속 나타난다.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고 그만 돌아가라고. 전진할 수 없는 지점, 되돌릴 수도 없다.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이미 지나온 것들은 모두 그렇다. 후진이다.
막다른 지점에서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거스를 수 있고 후진할 수 있는 묘수는 얼마나 다행인가. 삶을 한 수 물러주는 것만 같다. 지나간 것에 대한 조금의 위로, 조금의 보상 같은 것. 약간의 생을 물러준다면 나는 지나온 생 어디쯤으로 갈까. ‘영산’을 만나고 팔짱을 끼고 동행을 시작했던 무안 그곳으로 돌아가겠다. 당신은 어느 날로 가고 싶은가?
전망대에 올라 강을 바라본다. 함께 걸었던 ‘영산’은 가고 이제 강으로 남은 그를 깊이 들여다본다.
평균 수위를 넘은 듯한 과묵한 강의 두께가 제법이다. 과묵한 것들은 흘러가는지 멈춰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리도 높낮이도 없다. 살면 살수록 알 수 없었던 그‘영산’의 속 같다. 껍질을 벗겨도 벗겨도 그의 생각은 늘 과묵하고 불투명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소리도 요란한 나는 얕은 냇물 같아 늘 들키는 인생이었고 쥐고 있는 패를 다 내보이는 사람이었다. 이제와 서로의 패를 본들 또 못 본들 어찌할 것인가. 강은 흐를 것인데.
그래서 그 ‘영산’이 영산강처럼 넓고 깊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저 시골동네 도랑이다. 영산강인줄 알았더니 살수록 좁디 좁은 도랑이라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야말로 물릴 수도 AS도 안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