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무안 4.
조금나루를 안고 있는 망운면은 가오리연을 닮았다. 가오리연의 왼쪽 옆구리는 조금나루까지 연결된 바다다. 6Km 정도의 옆구리 끝 마치 고집 센 막내처럼 삐죽 자리하고 있다. 그 긴 바다가 하염없어서 바람이 많은 날은 하염없는 사람마다 서성여도 좋을 조금나루.
조금나루로 가는 주 도로인 송현 교차로까지는 해안길로 들어서고 싶은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가까이서 또 멀리서 바다의 유혹이 만만치 않지만 눈도 마음도 질끈 감아야 한다. 만약 해안도로로 진입하는 길을 놓치고 ‘저 길로 가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면 차라리 잘됐다 생각해도 좋다.
송현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면 갑자기 왕복 2차선 마을길인데 바로 조금나루 길이다. 나는 3Km 남짓한 이 길이 참 좋다. 언덕을 넘어서면 잠시 가려졌던 드넓은 바다가 하나둘씩 풍경을 벗고 서서히 나타난다. 어지럽게 서있는 전봇대들마저 정겹다. 그리고 조금나루까지는 마치 갯벌 위를 걷듯 썰물의 속도에 맞춰 스스로 더뎌져야 한다.
여름 마지막 자락 위 야영 중인 사람들이 텐트를 열어 아침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저 바다 물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작은 조금에도 나룻배를 탈 수 있다는 조금나루, 그 물길을 따라 작은 배가 한 척 흐르고 있다. 제법 빠른 유속에 어지럼증이 돋는다.
‘공사 중’ 간판들, 아직 완성이 먼 듯한 공사장, 여름이 남긴 쓰레기 더미들이 무심히 풍경을 점령하고 있어 마음이 어수선하고 건조해진다. 곁에 바다가, 건너에 마을이, 이제 긴팔이라도 걸쳐야 할 서늘한 계절이 그 모든 것들을 다행스럽게 한다.
이제 비로소 가오리연의 옆구리를 되짚어 해안길을 따라간다. 이 드넓은 바다의 속살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기술도 없어서 그저 한 컷 한 컷 카메라에 나누어 담는다. 바다를 앞에 둔 마을 풍경이 어여뻐 한참을 머무른다.
긴 장화를 신고 갯벌에 나가려는 어부들이 바다를 향해 서 있고 가로수 아래 전동스쿠터를 세워놓고 농작물을 어루만지는 어르신들이 눈에 띈다. 농사일, 바다일이라는 것이 긴 노동 끝에 비로소 수확되는 것. 그럼에도 논농사나 밭농사가 한창이어야 할 땅들이 군데군데 묵은 채 있고 또 군데군데에서는 잔디가 자라고 있다. 이제 묵힌 땅들이 점점 많아질 테고 언제가 우리 곡식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겹게 땅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더없이 고맙고 애틋하다. 그럼에도 나는 농사일이라면 젬병이고 싶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벼 수매에 나가신 날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돌아오셨다. 술기운에도 나락 값으로 얼마 받아서 비료 값, 약 값, 기계 값으로 얼마 나갔다고 어머니와 마주앉아 한 해를 셈하셨다. 남은 돈을 받아 든 어머니는 호산댁네, 마산댁네에도 얼마씩 갚아야 한다고 아버지 한테인지, 혼잣말인지 돈 나갈 데를 들먹이셨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돈을 비닐봉지에 돌돌 말아 쌀독이나 뒤주에 넣어 두시곤 했는데 다음 해 자식농사, 논농사, 밭농사에 써야 할 밑천이었다. 금세 돈은 떨어지고 다시 꿔 쓰는 삶이 반복되었지만 그것마저 기껍게 오 남매를 키우셨다. 나중에 도시에 있는 자식들 곁으로 나오신 어머니는 TV에서 농사짓는 것만 봐도 ‘싸락싸락’하다며 고개를 돌리셨다. 이제 그 일은 수십 년 동안 흙에 물들어 두터웠던 어머니의 손톱이 하얗게 얇아지는 것만큼이나 오래된 일이 되었다.
차량 두 대가 겨우 오갈 수 있는 해안, 현경면 송정리로 접어들어 끝까지 간다. 멀리 조금나루가 쓸쓸히 희미해지고 큰 바위처럼 갯벌에 박혀있는 탄도, 죽도도 저만큼 멀어진다.
앗, 보행자 전용도로를 달린 끝, 도로로 나갈 수가 없다. 길에게 잘못했다고 해봐야 소용이 없고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에는 가끔 함정이 있다는 걸 생각한다. 그리고 십리 길을 되짚어 나오는 길, 폐선은 하염없이 바다가 그립고, 건조 중인 파뿌리는 더없이 햇살이 그립고, 그 곁에는 누군가 그리운 가을꽃이 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