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무한 무안

海際에서 解除되다

무한 무안 3.

by 지상

'본래는 서로 맞닿다,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뜻을 나타내는 阜(언덕 부) 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祭(제사 제) 자가 합쳐진 형성자이다. '阜' 자는 구획이 나누어진 모습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祭'의 본래 의미인 '접촉하다'라는 뜻과 합쳐서 '벽을 이은 곳이 꼭 맞다'라는 뜻이 되었다.'라고 위키백과는 해제海際의 ‘제際’ 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면이 바다와 혹은 바다와 바다가 맞닿아 있는 해제와 그 주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해제 가는 길은 현경면의 송정, 수양, 용정, 오류, 마산, 가입 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이 마을들이 만들어낸 지방도 77번 도로는 흡사 양쪽에서 바다가 육지를 밀어 올리고 있는 형상이다. 마치 내가 카퍼레이드를 하고 바다와 땅이 도로 쪽으로 모여들어 축하를 해 주는 것만 같다. 좌우를 우아하게 번갈아 보며 손이라도 흔들어 주어야 할 것 같이.

나는 그 길을 ‘축하의 물결로’라 부른다. 그렇지만 몇 년까지 주로 이용했던 도로는 훨씬 더 정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 정비와 확장으로 저속의 운치는 사라지고 일이 있을 때나 가야 할 것 같은 고속의 길이 되어 가고 있다. 때때로 불편함은 정이고 여유이며 충전이다. 느리고 굼떠도 불편함 조금쯤은 보존했으면 좋겠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힘을 얻기도 하니 말이다.





海際, 解除


해제면으로 접어들기 전 왼쪽으로 멀리 소나무 숲이 보인다. 그 너머 분명히 바다가 있을 것 같은 확신에 농노로 좌회전한다. 일탈이다. 차로 지나기에는 다소 조심성이 요구되는 길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탈로 좌회전했던 것일까 ‘도로끝’에 부딪힌다. 그렇다고 되돌릴 수는 없는 일, ‘도로끝’에서 또 한 번 좌회전하여 본격적으로 농노를 따라간다. 초록의 벼가 익어가는 길을 지나 이내 솔숲에 닿았으나 그 너머를 확인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앞 범퍼를 넘어서는 풀숲, 차량 하부에 닿는 흙더미가 진입을 막는다. 차를 되돌리기에도 수월치 않아 에라 잇, 직진한다. 그렇게 위험, 불안을 넘어서니 놓칠 뻔한 바다다. 어떤 곳들은 무모한 직진이 아니라면 닿을 수 없는 법.

도로끝, 일탈로 좌회전하다


스프링클러가 공중을 돌며 막 옮겨 심은 어린 케일을 키우고 있거나 튼실한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는 언덕진 밭을 지난다. 아직 무엇이 심길지 알 수 없는 빈 땅도 지난다. 빈 땅, 제멋대로 자라는 풀들을 허용하며 휴식하고 있는 넓은 밭을 보니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마치 어린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모처럼 엄마가 집에 계신 것처럼.

안식기



홀통 유원지, 아니 홀통 포구로 진입한다. 유원지라는 말이 그다지 내 맘에 와닿지 않아 포구로 바꿔 불러본다. 딱 그렇지 않은가. 낡은 배들이 바다를 떠나 쉬고 있고 몇 척의 배들은 물때를 기다리며 갯벌에 고여 있는 풍경이. 더욱이 한 번쯤 옷깃을 세우고 쓸쓸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서 있기에는 유원지보다야 포구가 더 그럴싸하다.

-언젠가 오빠랑 싸웠을 때 엄마가 오빠 편을 들어서 내가 속상해하니까 여기에 데리고 왔었어. 그때 엄마랑 연포탕 먹었는데 기억나?

다행이다. 같이 짧은 나들이를 한 일 보다도, 둘이 마주 앉아 연포탕을 먹은 일보다도 서운하게 한 일만 기억하고 있다면 딸아이와 나는 지금 어떤 눈빛을 주고받고 있을까. 다행이다. 현경면에 속하는 홀통 바다 건너편이 해제다. 해제에 들기 위해서는 삶의 무장을 해제解除 해야 할 것 같다. 짓누르는 일의 무게들, 풀리지 않고 머릿속을 흔드는 인간관계들, 맺혀있는 매듭을 풀고 해제로는 그렇게 가야 할 것 같다. 그러니 금방 폐장한다는 홀통 바다까지 두고 미련 없이 나온다. 딸아이와의 서먹했던 과거도.



홀통 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있는데 직진 길 위로 정갈하게 자리한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으로 단정한 밭 다랭이들 나를 부른다. 결국 직진해버리고 말았는데 작은 농노여서 더 이상 마을로 가지 못한다. 그 너머로 또 하나의 바다가 펼쳐져 있고.

너머에 바다


해제로 가는 양쪽 바다는 민낯의 갯벌을 드러낸 대로 숨긴 대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바다다. 언젠가 무안에 간다면 특히 홀통 교차로에서 수암 교차로까지는 양쪽의 바다를 음미하며 천천히 지나가길 바란다. 바다가 육지를 최대로 밀어 올린 이 구간은 양쪽 바다를 다 볼 수 있어 신비롭고 신기하다. 이 길 위에서는 뒤차들을 먼저 보내고 갓길에 차를 꼭 세워야 한다.

더 이상 어여쁠 수 없고



해제면 소재지는 웬만한 읍만큼 규모가 있다. 오래된 다방에서 여종업원이 보자기에 싼 커피 쟁반을 들고 나와 오토바이 뒷 자석에 올라탈 것만 같고 어딘가에서 언니, 하며 후배라도 뛰어올 것 같다. 한참 동안 금다방 앞에 차를 세우고 두리번거린다. 드디어 고향에 도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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