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으로 시어머니가 찾아왔다. 일억 이라고 생각하라며 만 원짜리 한 뭉치, 백만 원을 내놓으셨다. 나중에 부모를 모시겠다며 시골에 있는 산 판 돈은 몇 년 전에 장남이 가져가고 소방도로로 편입된 손바닥 한 집 보상금은 시동생에게 준 직후였다. 당신 몫조차 남기지 않은 상태였다. 왜 우리한테만 적게 주느냐고 묻기보다는 어머니는 어떻게 사실 건지 걱정이 더 앞섰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손바닥만 한 집에서 큰아이를 1년간 봐주셨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백만 원은 우리 집 첫 차를 사는데 밑천이 되었다. 프라이드 베타. 친정에서 봐주고 있는 둘째도 농사철이 되기 전에 데려와야 하고 연년생인 두 아이를 놀이방에 보내려면 무엇보다 차가 필요했다.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1995년 초봄이었다.
이후 프라이드는 내 숨구멍이었다. 단칸방의 삶과 맞벌이, 육아의 고단함을 태워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었고 때때로 악이나 욕을 내지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마다 내달려 당도한 곳은 도리포였다. 무안읍에서 서쪽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따라가며 현실을 다독였다. 그렇게 도착한도리포엔 ‘도로끝’이라는 큼지막한 간판이 붙어 있었다. 세상에 길이 끝났다니... 그‘도로끝’을 휙 뛰어내린다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이 쓸쓸했고 사뭇 유혹적이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두 곳 허름한 횟집이 자리하고 있고 낡은 그물들이 쌓여있거나 펼쳐져 있던 곳. 고깃배 몇 척이 하릴없이 포구에 서 있던 그곳에서 나도 낡고 지친 배처럼 서서 망연히 바다를, 바다 건너 저쪽을 바라보곤 했다. 어쩌면, 거기에서 길이 끝나지 않았다면, ‘도로끝’이 돌아가야 한다고 등을 밀지 않았다면 나는 안 돌아왔을까? 만약 거기 길이 계속 나 있었다면 어디론가 떠나버리지 않았을까? 그때 솔숲 사이로 지는 노을은 작은 위로였고 강퍅한 내 삶 저 너머로 가는 경계였는데 그 끝을 딛고 되돌아 나오면 현실이었다. 모든 날이 기로였으며 미로였던 시기였다.
기로였고 미로였으며
오로지 이정표와 지도에 의지해 닿았던 곳. 가끔은 길을 잃기도 하고, 잘못 들기도 해서 다시 되돌아 나오거나 농로를 달리기도 했다. 무서움, 조급함, 두려움 이런 것들이 뒤섞여 핸들을 쥔 손에 땀이 배였다. 급기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부딪혔을 때는 배가 되었다.
지난 삶을 ‘고단함’이란 그릇에 모두 담기엔 녹록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저 흘러갔다. 길을 잃고 헤매던 삶도 길을 따라 현실에서 도망치던 삶도. 한편으로는 길을 잃는다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차츰 알아가던 때였다. 그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곰삭은 설렘으로 발효된다는 것도. 어느새 그 맛에 길들여졌고 떠나기를 반복하며 모든 길 위에는 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덧 지도는 머릿속에 새겨지고 어느 자동차의 오래전 광고 카피대로 ‘길이라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식의 나만의 삶의 방식이 만들어졌다. 그러니 가끔은 길을 잃어도 볼 일이다. 그 길 위에서 삶은 단단해지고 각자의 길을 찾을 테니.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내가 늘 바라보았던 저쪽은 영광과 함평이었다. 저기가 어딜까 미지의 세계처럼 언젠가 가 보아야지 했던 곳. 그 사이 지어진 정자에 앉아 있으면 영광으로 이어진 칠산대교가 머리 위를 지난다. 그 옆으로는 수산물 위판장이 들어서 있고 도리포 횟집들은 말끔하게 단장했으며 제법 손님이 드는 카페도 들어서 있다. 그때의 허름함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들로 채워나가고 있다. 옛 공간이 사라지고 새 공간들이 하나 둘 씩. 피가 되고 살이 된 옛 시절도 허물어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지만 노구의 아낙들이 여전히 그곳을 거닐고 카페에서는 도리포 다운 김을 곁들인 커피를 낸다. 다행이다.
김 내는 카페
무안 특산물을 파는 컨테이너 상점에서 나는 가끔 바다를 마주하고 컵라면을 먹는다. 구운 계란을 곁들이면 흐뭇한 한 끼 식사가 된다. 물때에 따라 갯벌도 바다도 마주한다. 오늘은 갯벌을 어루만지며 바다가 들어오고 있다.
노을 지던 솔숲은 해당화 몇 그루를 더불어 키우며 변함없이 넓은 품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바다 저편 함평을 마주한 산비탈과 황토색 밭을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은 작고 고요한 해안 길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칡넝쿨이 야단법석 길을 점령해 오지만 나는 항상 그 길을 탄다. 그리고 가만히 ‘지상로 1번 길’이라 내 이름을 붙여놓았다. 누군가 그때의 나처럼 도리포에 간다면 이 길을 아낌없이 내줄 것이다. 그리고 다독여 말해 줄 것이다. 어두운 시간을 지나다 보면 어딘가에서 빛나는 시간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그러니 걱정 말고 걸어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