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고생이 모자라니?

다시 산티아고 3. 발 카를로스에서 론세스바에스

by 지상

어김없이 새벽 2시 반경에 잠을 깬다. 집에서도 통잠은 자지 못한 날이 많았으니 굳이 시차 탓은 하지 말자고 잠을 청한다. 좀 더 자야 해 스스로 다독이면서.... 징검다리처럼 4시경을 거쳐 6시 알람 소리에 아직은 가볍게 몸을 일으킨다. 생장 드 피드포르에서 묵었다면 론세스발레스까지 28 킬로 미터를 걸어야 하지만 어제 발 카를로스까지 걸어 놓은 덕분에 오늘은 그나마 11킬로미터 걷는다는 것이 가벼웠다. 바케트 빵 요거트 납작 복숭아로 아침을 해결하고 조금 더 어둠이 걷히길 기다렸다. 7시 45분, 시작 기도와 묵주기도로 이튿날 걸음을 시작했다.

얼마 걷기도 전에 순례자 사무실 봉사자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왕복 2차선 도로에 한국의 지방도 같은 찻길엔 갓길도 없어 차도로 걷는 구간이 많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차가 오면 일부러 조심해달라고 손을 한 번씩 흔들어주곤 했다. 숲길, 찻길, 숲길, 찻길의 반복이고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속도는 두려움의 속도와 비례했다. 가볍게 출발한 것과는 달리 금세 몸이 무거워졌다. 거기에 비까지..... 처음 카미노를 걸을 때 어느 구간은 버스로 이동한 적이 있었다. 비가 오는 길을 판초우의를 걸친 채 걷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무슨 일이 있어 이 빗길을 걷고 있나 마음이 시큰해졌었는데 오늘 우리를 보는 차 안의 사람들이 그러겠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그저 쉬고자 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나름의 사연들은 나름의 몫대로 남겨두고 측은지심은 금물.


잠시 비가 멈춘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잠깐 서서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려 깊은숨을 쉬었다. 이 작은 행위들이 이 여정에서 내가 쉬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갈길이 멀다고 애닳아하지 말고,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중증의 조급함도 치료해야 할 것 중 하나였으니.


숲길로 들어서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법 굵은 빗줄기였다. 우의도 없고 피할 곳도 없으니 그저 비를 맞을밖에 도리가 없었다. 잠깐 내리고 말 비가 아닌 것 같아 비의 공간을 마음에 마련했다. 그렇게 비는 걷는 다섯 시간 내내 내렸다.


몸도 마음도 무거워지고 추워지고 길은 절반이나 더 남았는데 스스로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왜 이리 고생길을 자처하냐고. 아직도 고생이 모자라냐고. 젊어서 고생했으니 이제 편안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맞아. 아무런 핑계도 대지 못하고 인정하고 말았다. 어쩌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한 말은 고생을 좀 더 수월하게 견디게 하기 위한 어른들의 신박한 묘수였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요즘 누가 고생을 사서 한단 말인가 아무리 젊어도 사지도 않거니와 돈을 주며 하래도 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 늙은 나이는 아니지만 확실히 젊지도 않은 나이에 고생을 사서 하고 있으니 이 무슨 세상을 역행하는 짓이란 말인가.

대도시로 들어가 2,3주쯤 즐겁게 여행하다 귀국해, 또 다른 유혹의 목소리가 저 깊은 곳에서 크게 들려왔다. 빗물과 함께 힘껏 털어냈다.


내리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십자가가 나타나면 내리막길이라 알려주고 앞서가던 아이가 ‘십자가다’ 외쳤다. 90% 이상을 오르막 길만 오르다 거의 안 죽을 만큼만 힘이 남겨진 상태여서 십자가를 보자마자 ‘감사합니다.’가 연발로 나왔다. 마른땅이었으면 주저앉았을 것이다. 마른땅이 아니라는 핑계로 주저앉지 않을 힘, 그 힘은 죽지 않을 만큼의 힘이었고 그 힘은 어떤 상황에서도 남겨 주시는구나 싶어 주책없이 목이 메어왔다.


내리막의 마지막 지점, 희망 같은 알베르게가 있고 온 몸이 축축한 채로 들어서니 두 시부터 접수가 시작된단다. 아.... 이런. 젖은 채로 이곳저곳 들여다보고 조그만 카페에 들어 커피로 몸을 식힌다. 스틱을 잡았던 손이 물에 불어 펴지지 않고 오래도록 물기가 가시지 않았다. 순례자 코스로 저녁자리에서 두 명의 독일인과 한 명의 프랑스인이 같이 앉아 와인으로 순례길을 서로 응원했다. 되지도 않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어제 순례자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 처자는 산맥을 잘 넘었을까 걱정이 앞섰다. 병 같은 다정이었겠지만 무사히 도착하길 기도하며 스페니쉬 미사를 드렸다. 세 분의 노 사제가 복사도 해설자도 없이 성가까지 모두 인도했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순서가 같으니 그런대로 참례가 가능했다. 가톨릭 공동체의 아름다움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미사가 끝나고 모든 순례자들이 제대 앞으로 모여 성모님께 특별한 보살핌을 청하며 성모 찬송을 합창했는데 나도 한국어로 크게 불렀다.

( 9월 27일 화, 걷기 2일째, 11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