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반 잠이 깼다. 한국시간으로는 아침 아홉 시 반이니 시차는 세 시간쯤 극복한 것인가. 바욘의 새벽 강물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간혹 차 소리, 오토바이 소리... 본격적으로 걸어야 하는 날인데 걱정이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그럼에도 동행한 딸아이의 고른 코 고는 소리가 다행스럽게 들린다.
자는 게 늘 관건이었다. 어떤 상황에도 푹 잘 수 있기만을 바랐다. 보기와는 달리 예민한 구석이 많은 나는 여타의 일에서는 예민함을 조절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하나 수면만큼은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몹쓸 수면은 물수제비 뜨듯 띄엄띄엄 이었고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다.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도 되도록이면 집에서 자는 쪽으로 일정을 잡았다. 그러니 긴 여행을 준비하면서 수면은 단단히 준비하고 각오해야 하는 것 중 하나였다.
14년 전에 첫걸음을 했던 생장은 그대로 아름답고 순례자들의 슬프거나 애달프거나 혹은 기쁘거나 한 짐들을 받아주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스산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언어도 안되고 아이들은 어리고, 걷기 운동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우리들이 안 되는 것 투성이만 배낭에 넣어 무모하게 떠난 여행이었다. 그렇게 한 달여를 걷기도 하고 버스로 이동하면서 나중에 꼭 완주하겠다는 다짐을 14년이 지난 오늘에야 실행하게 된 것이다.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오늘 B루트인 발 카를로스로 갈 예정이라고 하자 극구 반대했다. 조금이라도 내일 일정을 수월하게 소화하고자 발 카를로스 루트를 잡았는데 첫 계획부터 틀어지니 무계획이 계획이었던 각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예정대로 발 카를로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기의 첫 관문을 지나 시장이 열려 북적이는 광장을 지나.
얼마 되지 않아 극구 반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좁은 도로와 쌩쌩 달리는 차들... 어쩌랴 조심하는 수밖에. 그래도 들길, 산길이 포함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산길엔 밤이 익어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다. 나는 자주 멈춰 습관처럼 밤을 줍고 딸아이는 저기 앞서 나를 재촉한다. 짐만 무거워지고 쪄먹을 수도 없다고. 백번 맞지만 저리 토실하게 여문 것들을 어찌 그냥 지나친단 말인가. 그건 열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오히려 나무랐다.
1700미터의 피레네 산맥을 넘는 일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생각이었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기 위함도 있었다. 그러나 각오의 정도가 덜했던 것인지 1400미터 발 카를로스 길도 힘들긴 매한가지였다.
어느 지점이 되자 아이도 나도 말이 없어졌다. 각자의 생각과 힘겨움이 딸아이와 내 걸음 사이로 스며들었다. 딸아이와 같이 여행한다고 하자 어떤 분이 걱정을 앞세우셨었다. 당신도 떨어져 사는 딸아이와 만나면 이쁘고 반가워서 일주일 정도는 물고 뜯고 하다가 그 이후로는 서로 안 좋은 것만 보이는데 어떻게 24시간 한 달을 지내냐고. 맞다. 나도 걱정 중 하나였다. 특히 엄마의 나이 듦에서 오는 굼뜸, 느린 이해력, 통하지 않는 대화 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 역시 엄마는 늙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정정하게 서있어 줄 것만 같았으니까. 딸아이와 진지하게 몇 가지 규칙을 정하며 무엇보다 엄마의 나이 듦과 느림, 힘듦을 이해해 주길 주문했다.
아레네 구이를 지난다. 프랑스령에서 스페인령으로 잠시 넘어갔다가 다시 프랑스령을 밟는다. 그리고 다시 스페인령으로 넘어간다. 이 구간을 자세히 살펴도 두 나라의 영토를 넘나 든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이고 어느 지점 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프랑스인과 스페인 사람들이 서로 이웃하며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었고 세상에서 단 하나의 분단국가의 국민인 나는 어느 때보다 씁쓸하게 그 구간을 지났다.
2014년, 체코 프라하 중앙역에서 독일 프라이브루크로 가는 밤 열차를 탄 적이 있었다. 급하게 기차를 타고 자리를 찾아 들어간 침대칸에서 한숨 돌리며 낭만을 안주삼아 일행들과 캔맥주를 기울였다. 어느 순간 딩동 딩동 문자가 울리기 시작했다. 기차가 독일령으로 진입하자 독일 대사관에서 보내는 이러저러한 문자들이었다. 겨울이었고 가로등 아래로는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낭만 때문이었는지 술기운 탓이었는지 폭설 때문이었는지 문자때문이었는지 조국의 분단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으나 약속이나 한듯 침묵했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문은 잠겨있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지나간 사람에게 물으니 관리자에게 연락을 취해준다. 잠시 후 나타난 관리자는 이런저런 주의사항과 비번을 알려주고 미련없이 떠나고. 지친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가니 이미 도착한 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어르신들 돌보는 일을 하며 정년을 앞두고 휴가를 왔단다. 알베르게에서 머무는 사람이 셋 뿐이어서 편안하게 걷기 첫날을 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