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스틱

다시 산티아고 1. 사를 드골 공항, 그리고 바욘으로

by 지상

드골 공항 근처 호텔에 짐을 풀었다.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호텔 앞 쇼핑몰로 가는데 가을이 완연한 파리의 밤바람이 기분 좋게 차다. 우리 식으로 해석하자면 해초를 얹은 누드김밥과 맥주 한 잔으로 배를 채우고.


다음날 10시 체크아웃인데 바욘으로 떠나는 국내선은 오후 2시 35분이라 9시경 나와 인근에 예쁜 마을 Roissy en France가 있다는 블로그 글을 기억하고 배낭을 멘 채 구글 지도를 따라 걷는다. 인도는 없고 차도와 전철이 다니는 사잇길로 사람들이 걸었던 흔적에 의지하여 간다. 그렇게 텅 빈 길을 30분을 걸어가도 마을은 나타나지 않고 설마 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가는데 뒤돌아서기엔 이미 늦었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말을 굳게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플라타너스 잎 소복이 진 길을 지나 호텔들이 모여있는 구역이다. 호텔 사잇길 끝까지 올라가도 마을이 보이지 않고 구글맵을 찬찬히 다시 짚어본 후에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텔 입구까지 되돌아와 지도가 가리키는 길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짚어간다. 이내 나타나는 마을.

드골공항 근처


일요일 아침이라 마을은 조용하고 카페들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다. 천천히 마을을 돌아본다. 성당을 지나는데 마침 10시. 종이 울린다. 성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텅 빈 성당 마당을 배회하며 잠시 여정을 신고한다. 사실 6주의 휴가를 내 이곳까지 오면서 아무런 목적을 정하지 않았다. 뭘 이루겠다든가, 뭘 얻겠다든가, 뭘 하겠다든가.... 오히려, 생각하지 않겠다, 계획을 세우지 않겠다, 등등의 하지 않겠다,를 결심했고 그렇게 무념하게 걸어볼 요량이었다. 힘들면 쉬고 자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보면서 느끼고 감동하고... 이것들이 더 큰 목적인가.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은 2008년 여름에 중3, 중2 아이들과 2주가량 걸었던 적이 있었다. 언어는 젬병이었고 그렇게 긴 여행도 처음이었으며 천방지축 두 아이들까지 돌봐야 하는 여정이었다. 왜 그리 무모하게 먼 유럽까지 왔었는지... 아버지를 여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즈음 20여 년 만에 긴 휴가를 받았었다. 그동안 휴가를 거의 쓰지 못했으니 남아있는 휴가들을 모았다면 몇 달은 됐을 것이다. 당연히 지쳤고 일 머리는 돌아가지 않았으며, 직원들을 수용하는 것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계획한 산티아고 걷기였다.

내가 아는 한 중3, 중2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어떤 일도 수월하지 않다. 그 수월하지 않은 일을 감행한 것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사는 중3 아들이 좀 달라질까 해서였다. 한 마디로 아들 입장에서는 억지 동행이었고 덩달아 중2 딸도 함께한 길이었다. 그 길에서 마저 휴대폰을 놓지 않은 아들과의 말싸움이 지속되었다. 그즈음의 나는 밥만 먹고 잠만 자고 공부만 하면서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없는 시간까지 내서 아이들을 닦달하는 엄마였다. 그 닦달의 시간이 얼마나 불행했는지, 얼마나 의미 없었는지, 아이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니 공원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머물며 쉴 수 있도록 만든 우리 동네 공원과 비슷한 Parc de la mairie이다. 10시가 넘으니 배가 고파오는데 카페나 식당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공원 옆에 있는 호텔로 들어간다. 호텔에는 카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없고 조식뿐이다. 호텔 조식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다른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거였으면 숙박했던 곳에서 편하게 해결했을 것이다. 거의 포기상태에서 구경삼아 여기저기 기웃대다 로비 한편에 일찍 호텔을 나서거나 레스토랑을 닫은 후 떠나는 숙박객들을 위한 작은 바를 발견하고 말았다. 커피와 빵과 사과.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요기를 하는 수밖에. 더군다나 동행하고 있는 딸아이를 굶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느 때보다는 진한 기도로 크로와상 네 개, 커피 두 잔, 사과 두 알을 사서 로비에 앉아 유유히 아침을 해결하고 공항으로 간다.

수속을 기다린 사람들이 많다. 수속과정에서 스틱을 빼앗겼던 일이 있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고 모니터에 나타나는 그림 중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물건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새로 장만한 스틱을 이곳에 빼놓아야 하나 싶어 아까운 생각이 든다. 하느님께서 빵값을 이리 가져가시나 싶어 기도를 할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대를 빠져나오던 배낭이 검색원들이 일일이 열어봐야 하는 라인으로 분류된다. 스틱이 없으면 안 되는데.... 마음을 비우고 기다렸더니 빼지 않고 그대로 준다. 스틱에 부착된 금속으로 인해 분류되었다면서. 별일 아닌 듯했지만 마음 졸이며 애틋하게 배낭을 바라본 내 마음이 일순간에 풀어졌다. 감사할 일이 추가된 샤를 드골 공항을 떠나 바욘으로 간다.

바욘을 가로지르는 adour 강


다음날 기차를 타기 위해 바욘 역을 둘러보았다. 생장으로 가는 플랫폼을 찾을 수 없어 서성거리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을 시작한다. 생장으로 가는 버스도 있다면서 역사 앞 버스터미널로 우리를 안내한다. 기차로, 다음날 간다고 해도 영어와 프랑스어가 부딪혀 친절도 어긋난다. 나는 직업병이 도져 독거노인인가, 외로워서 역에 나와 오가는 사람 구경하다 우리 같은 사람을 만나면 봉사하시나, 어디 출타한 할머니 기다리시나... 어떤 이유라도 할아버지의 삶이 쓸쓸해져서 내 마음도 쓸쓸해진다. 결론은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매한가지고 똑같다는 것. 아직 환한 7시, 바욘의 밤이 어둠으로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