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설 힘이 있다면

다시 산티아고 5. 수비리에서 팜플로나

by 지상

어제 사놓은 커다란 토마토와 홍차로 아침을 때웠다. 걷기 4일째, 비도 4일째다. 한참 동안 공장지대 곁을 걸었다. 마르지 않은 빨래 때문인지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배낭의 무게가 어제보다 더 무겁다. 숙소에 난방이 되지 않아 매일매일 빨아야 하는 옷가지들이 제때 마르지 않는다.

계속되는 진창길,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옷, 신발, 마음까지 엉망이 된다. 미끄러지는 것이 무슨 대수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일어설 의지만 있다면 우리 삶에 몇 번의 넘어짐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불편한 것 투성이다. 누가 봐도 조금만 개선하면 훨씬 더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불편함을 당연히 순례자의 몫으로 내버려 두는 것 같아 언짢은 마음이 지속되었다. 그러다 이 불편한 곳에 왜 왔느냐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맞다. 왜 왔는데... 해야 할 고생 중에는 불편한 서비스도 낡은 환경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걸 모른 거냐. 두 마음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5킬로미터쯤 걸으니 라라소냐. 동네 한참 안쪽에 위치한 카페에 들렀다. 커피와 크로와상을 시키니 추운데 보드카 한 잔 할 거냐 주인장이 물어왔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갈길이 멀어 손사래를 쳤다. 사람 좋은 주인장은 이곳을 거쳐간 한국인이 부른 김광석 노래를 들려주었다. 에라 모르겠다, 기분도 꿀꿀한데 나도 한 소절 큰소리로 따라 불렀다. 주인장은 태극기를 한 장 꺼내오더니 쓰고 싶은 게 있으면 쓰라고 한다. 막상 뭔가 쓰려고 하니 직업병이 도져 ‘세상의 모든 장애인은 평범할 권리가 있다’고 쓴다. 이 길의 모든 사람들의 안녕과 함께. 사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도지는 내 직업병이 맘에 들지 않았다. 늘 실망하게 했고, 씁쓸하게 했으며, 사기를 떨어뜨리는 복지 정책이었으니. 실망해도 씁쓸해도 매일 사기가 떨어져도 불쑥불쑥 치고 올라오는 것은 30년 넘게 이 일을 해 온 대가니 어쩔 수 없을 밖에.

주인장은 우리 이름을 묻더니 묻지 않은 본인 이름도 말해준다. 올리비에. 휴대폰의 펜으로 한국말로는 이리 쓴다고 알려주고 스페인어로 써달라고 하니 olivier라고 써주면서 갤럭시 노트의 기능에 놀란다. 엄연하고도 사소한 혹은 뻔한 것에서의 자부심이라니. 입구까지 나와 따듯하게 건네는 그의 인사를 뒤로 하고 다시 길 위에 오른다. 도착지에 가까워질 때까지 아르가 강과 동행한다. 지난여름 이 강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고 걸음을 쉬게 하고 위로를 건네었을까 싶은데 강은 말이 없었다. 강가로 우거진 즐비한 너도밤나무, 떡갈나무들의 숲도 한몫했을 것이다.

다시 굵어지는 빗줄기에 아우터 모자에 판초우의 모자를 겹쳐 썼다. 주변으로부터의 침잠. 걸음에 맞춰 서걱거리는 우의 소리, 멀리 자동차 소리,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생각 소리뿐이다. 걸음을 빨리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걸음은 자꾸 빨라지고 두고 온 것들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두고 온 것들이 계속 무어라 말을 한다. 내 머릿속도 또 하나의 배낭이었던가.


빠른 걸음은 마음이 어수선할 때 더 속도를 낸다. 오늘 아침 출발 전 사무실 직원과 했던 통화 내용이 마음을 소란스럽게 했고 다혈질의 나는 욱한 마음으로 직원도 소란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직원과 나의 어수선한 상황들을 걸음으로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근잘근, 눌러 밟듯이.


4일을 무사히 걸었으니 이제 아플 시간이 되었나 보나 허리, 어깻죽지는 물론 발톱 하나가 통증으로 검게 멍들어 가고 있다. 언젠가 빠질 것이라는 미리 알려주는 신호다. 어쩔 수 없는 일, 바셀린을 꼼꼼히 바르고 발가락 속 양말에 두툼한 겉 양말까지 신었는데도 갑작스러운 긴 걸음을 발가락이 먼저 안 것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순례자들의 흥겨운 몸짓 덕분에 아픔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주비리안을 건너뛰고 제법 큰 도시로 진입한다. 이국의 풍경은 발걸음을 조금씩 늦추고 이색의 건물들을 잠시 바라보며 쉬어가게 했다. 도시의 끝자락은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터인가 보았다. 남루한 옷가지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비에 젖고 깨진 유리창도 아랑곳없는듯한 삶이 보였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양면이 존재하는 부를라다를 끝으로 오늘 도착지인 팜플로나로 진입했다. 오래전에 쌓아 올린듯한 성벽이 단호해 보였는데 역사상 단 한 번밖에 함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팜플로나. 궁전, 건축물들, 여러 가지 전설들은 전통적인 도시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고 산업의 발전과 편리함은 현대의 모습을 느끼게 했다. 옛것을 잘 보존하면서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것도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지혜가 아닌가 싶었다.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정원도 마당도 없이 오랜 시간 멋스럽게 퇴색되어 감으로써 함께 새로워지는 공존이랄까.

오래전 헤밍웨이가 자주 갔다던 식당을 예약한다. 오늘 한 순간만큼은 헤밍웨이가 되어 문학적 감성을 한껏 살려 보는 것도 해봄직 하지 않겠는가.


(9월 29일, 목, 걷기 4일째, 20.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