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의 따듯한 인사와 응원을 받고 7시경 나헤라 숙소를 나섰다. 계속되는 일교차와 한낮의 더위, 나무 그늘이 거의 없는 돌길. 도대체 왜 이 길을 걷는지 새삼스레 질문이 솟는 날이었다. 아조프라, 시에루냐, 산토도밍고를 지나는 길, 더구나 오늘은 대부분 하루를 머무는 산토도밍고를 지나 6.5킬로미터를 더 걸어 그라뇽에서 머물기로 한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누적된 몸의 통증들이 예고 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통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첫걸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서서히 극으로 치달았다 어느샌가 사라진다. 아니 사라진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어디론가 익숙하게 숨어든다는 표현이 맞겠다. 걸음을 멈추면 다시 나타나니까 말이다.
우리가 떠나온 나헤라, 등 뒤에서 여지없이 해가 떠오른다. 단조롭고도 지루한 길이 걷는 내내 계속된다. 그나마 한 그루 서 있는 나무의 그늘은 앞서 걷는 자들이 모두 써버리고 손바닥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
반복되는 언덕들, 언덕에 설 때마다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뒤돌아보면 안 돼, 주문을 외우면서.
만약 뒤돌아본다면 어떤 신화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멈춰 버릴 것만 같았다. 한 편으론 이 만큼 왔구나 아득히 걸어온 길을 볼라치면 남아있던 힘마저도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몸과 마음 모두 더위에 지쳐 강력한 처방이 필요했다. 앞을 향해 가는 것, 땡볕 의자에서라도 쉬는 것, 누워 버린다. 나도 모르게 잠깐 낮잠에 빠졌다.
산토도밍고 성당 앞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그라뇽으로 출발한다. 여전히 지루함과 동행하고. 다행히도 그라뇽 알베르게는 한국의 예쁜 게스트 하우스 마냥 꾸며져 하루의 노고를 보상받는 듯했다. 그리고 저녁식사까지. 전형적인 스페인 여성이 운영하는 알베르게 저녁은 콩죽, 샐러드, 버터 감자구이로 모두 건강식이다. 프랑스인 세 명, 이탈리아인 한 명, 스페인 사람 세 명, 우리 한국인 두 명 모두 아홉 명이서 오붓한 저녁을 할 수 있었다. 서로 걷는 소감을 나누었는데 이탈리아인은 하루 50킬로미터 씩 산티아고로 향하는 대부분의 길을 걷는 중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걷고 기도하고, 걷고 기도하면서. 특히 한국인들이 많이 걷는 이유를 물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카미노를 많이 걷는다니 그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혹 종교 때문이냐고. 모든 이의 걷는 까닭을 알 수 없으나 종교 때문은 아닌 것 같다고 답해 주었다. 왜냐하면 미사를 드렸다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으므로. 식사가 끝나고 멋진 프랑스인의 멋진 노래 두 곡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카미노가 상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전통성을 가지고 본래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알베르게가 존재한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푸근한 저녁 시간 때문이었는지 모처럼 푹잤다. 사흘 동안을 오픈된 공간에서 평균 소음을 넘어서는 혹은 익숙하지 않은 소음들로 인해 수면을 취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아직 내 예민함은 얌전해 지지도 둥글어 지지도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