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참 좋았다. 퇴근 후 돌아 돌아 귀가했고 출장 후에 집으로 갈 때도 멀리 돌았다. 일을 하다가도 사무실 밖을 자주 서성이고,토요일이면 눈곱만 뗀 채 모자를 눌러쓰고 혼자서 조조 영화를 본 후 좋아하는 무안으로 드라이브를 갔다.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길들을 찾아다니며 한적한 도로에 내 이름을 붙여 나만의 길을 만들었다.그 혼자만의 시간이 내게는 충전이었고 휴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가 많지 않았다. 특히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친구가 없다. 어릴 적 친구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서 모임이 있을 때 외에는 잘 만나지지 않는다. 겨우 전화나 카톡으로 안부를 묻는 정도라고 할까.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3박 4일 이상 여행을 할 때면 쉽사리 피곤해졌다. 평소 잘 모르는 모습들은 생소하고 불편했다. 이해하긴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모습을 직면할 때마다 별종 같은 내가 생소했고 문제라도 있는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오롯한 고독
34.24킬로미터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온전히 혼자 걸었다. 가끔 마주쳤던 순례자는 무리일 거라며 그 전 마을(29킬로미터)에서 쉬라고 조언했지만 묵묵히 계속 걸었다. 첫걸음을 시작해서 10킬로미터를 갔다. 거기에 마을이 있었고 차 한 잔과 간단한 요기를 하고 다시 10킬로미터의 걸음을 시작했다. 그렇게 세 번을 하고 나니 4킬로미터 정도 남았는데 15킬로미터 짧았던 어제보다 더 쉽게 느껴졌다. 아마도 오늘은 온전히 혼자 내 마음을 독차지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아이나 같은 한국인이 앞 뒤 가까이 있으면 왠지 혼자만이 있을 때 생성되는 힘이 덜한 것 같았다. 기대고 의지하고 힘듦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왜 그렇지 않겠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서는 어떻게든 해결하는데 누군가와 함께일 때는 기대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니.
어제 온타나스 숙소에서는 바로 문 앞 침대에서도 생각보다 잘 잤다. 아직 어두운 온타나스 거리를 7시경 출발했다. 7,8킬로를 걸어 도착한 곳은 산 안톤 수도원 터. 원형은 사라지고 수도원을 기억하듯 기둥과 그 사이 벽들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과거 유럽의 대 재앙이었던 '산 안톤의 불'이라는 피부병을 치료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단다. 지금은 어느 순례자의 희생으로 온전히 순례 경험이 가능하도록 전기도 사용하지 않은 알베르게로 일부 사용하고 있는데 도착했을 때 여러 개의 촛불을 켠 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산 안톤 수도원
두 번째 마을 카스트로헤리츠를 지나 다음 마을로 이동한다. 끝이 안 보이는 언덕의 능선을 넘어야 하는데 은근한 오르막이 땀범벅이 되게 한다. 주변을 잠시 둘러볼 뿐 오르막을 오르는데 집중한다. 돌과 흙이 섞인 길, 무릎께까지 먼지가 뿌옇게 올라와 있다. 스틱과 발자국 내딛는 소리그리고 힘에 겨운 내 숨소리만 귀를 울린다. 자꾸만 사람들이 앞서가고 나는 계속 밀려난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드디어 발렌시아 지역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시작되는 뜻밖의 자작나무들, 가을은 자작나무 숲에서 시작되고 나는 갓 시작된 가을을 걷기 시작했다. 이테로 데 라 베가 마을을 지나고 보아디아 델 카미노 마을을 지나 목적지가 6킬로미터 정도 남은 지점, 언덕 위로 계단 몇 개를 올라서니 상상하지 못했던 운하가 시작되었다. 운하 양 옆으로는 미루나무,갈대들이 즐비하고 그 너머로 끝없는 고원의 평야가 펼쳐지고 있다. 이 운하의 담수가 저 넓은 평야를 적실 것이라 생각하니 내 마음도 촉촉해진다.
숲에서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프로미스타를 지나는 운하
운하를 따라 걷는다. 운하가 끝나는 지점에 오늘 목적지 프로미스타가 있다고 아이는 말하고 총총히 사라졌다. 아이도 혼자, 나도 혼자다. 어디선가 출발해서 어디론가 가는 모두가 나를 지나치고 나도 모두를 지나치고 오늘을 지나쳤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자리가 없다. 인근 100미터 앞에 다른 알베르게가 있다는데 100킬로미터를 더 가야 하는 듯온몸이 돌덩어리다. 잠시 주저앉아 있는데 위층을 부산하게 다녀온 호스피탈로가 침대를 마련했다며 오히려 안심하듯 전해준다. 오늘은 자는 것도 따로다. 외로움의 끝, 혼자일 때만이 키울 수 있는 힘은 참 단단하다. 부르고스에서 2.5유로에 사두었던 신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