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삶에 필요한 보조기구는?

다시, 산티아고 17. 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by 지상

프로미스타 시내는 아직 잠들어 있다. 맑은 하늘에 달과 별 그리고 도시를 스치는 바람이 적요를 더욱 깊게 한다. 땅이 넓으니 하늘도 넓다. 선이 없는 하늘도 땅만큼이다. 평야 동쪽 너머에서 능선을 오르는 새벽 햇살에 주홍으로 깃드는 대지와 하늘의 경계. 이제 곧 주홍이 흩어지고 엷은 햇살이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 목적지인 까리온까지는 19.88킬로미터. 오히려 짧아서 놓아버리기 쉬운 긴장과 각오를 더욱 단단하게 맸다. 중앙선 없는 왕복 차도 P980도로와 나란히 걷는다. 건조하고 무료하지만 눈을 들어 시선을 멀리 보내면 끝없는 지평선이 나를 데려간다. 태양은 된서리에 젖은 대지를 말리고 내 작은 키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무거운 발걸음마저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마음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 그지없다. 20킬로미터를 다 걸은 다음에도 마음이 마르지 않는다.

아직 어두우나(프로미스타를 떠나는 길)


S군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200812월에 우리 기관에 입사했다. 전체 직원 40여 명 장기근속자에 속한다. 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을 해 14년째 일을 하면서 부모님의 시름을 덜어주었고 작은 돈이지만 스스로의 용돈을 벌고 저축도 하면서 성큼성큼 성장해 나갔다. 서른이 넘은 S, 아니 이제는 S 씨라 해야겠다. 그도 여느 남성들과 다르지 않게 전혀 모르는 여성이어도 이상형의 여성을 보면 살짝 바라도 보고 말도 붙여보곤 했다. 대답을 하지 않거나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아도 한 두 번쯤 더 대시를 하다가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마음에 간직해 두고 누군가 물어보면 아직도 그 여성이 좋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좋아했던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텅 빈 마음을 잊은 듯, 숨긴 듯해서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그래도 어쩌랴.

서로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을.... S 씨는 어떤 사람 같은가.

S 씨는 발달장애인이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이고 본인의 인사에 답해주지 않으면 가끔 짜증도 내고 답을 해주어야 자리를 뜬다. 마음이 가는 대로 여과 없이 말을 하기도 해 비장애인들은 무섭게 느끼기도 한다. 앞서 와 같은 일을 비장애인이 했을 때 이상한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두려움을 느낀다. S 씨는 함께 일한 지난 14년 동안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발달장애 진단을 받는 그 순간 모든 보편적인 것과 격리되어 특별관리에 들어간다. 그들만의 삶을 사는 것이다. 스치고 만나고 경험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함께 어울려 살았다면 비장애인들이 언제 어디서든 그들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도 더불어 살기 어려운 사회구조는 그들을 격리한 채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해도 문제로 여기게 만들었다.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듯, 다리를 다치면 보조기를 쓰듯 발달장애인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보조기구는 그들에 대한 이해뿐이다. 처음부터 함께, 같이 살아가는 것만이 좋은 보조기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해결해야 할 것, 바꿔야 할 것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가끔 이런 글이나 말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의문이어서 궁극에는 늘 포기하고 말았다. 그만큼 변하지 않는 것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정책이라는 편견일 수 있는 편견, 선입견일 수 있는 선입견이 나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문득 카미노 위에 서 있는 때 편견과 선입견을 이제 그만 털어내라고, 그만큼 숨죽이고 살았으면 되었다고 일갈하듯 S 씨의 일이 날아들었다.

언젠가는 푸른 하늘이 부시고



글을 쓰는 동안에도 마음이 마르지 않는다. S 씨 어머니의 한숨이 머나먼 이곳까지 들리는 듯하다. 약자도 아니면서 늘 약자로 살아야 하고, 약자의 삶이라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늘 선하고 담담한 얼굴로 힘겨움을 토로하시던. 나는 이제껏 그들의 평범한 삶을 위해 큰 목소리를 내보지 않았다.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을가지고 그저 직장인으로 살았을 뿐이다. 90년대 초 사회복지에 첫발을 들였을 때 철장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모자라 문까지 잠갔던 일을 지금도 후회하는 것처럼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작은 행동이라고 하자고 다짐해 보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햇볕이 환했다. 이 빛이 세상의 모든 장애인들의 삶을 뽀송뽀송 말려주고 비가 오더라도 고슬고슬하게 유지시켜 주길 작은 기도 올린다.

저 언덕을 넘으면


('22년 1012, , 걷기 16일째, 19.88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