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에 젖은 길

다시, 산티아고 18.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사하군

by 지상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에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 밑에 님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아느니 님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이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

못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달이 환했다. 핸드폰의 불빛을 켜지 않고 달빛이 밝혀주는 길을 따라 걸었다. 흰 길이 더 희다. 가깝고 먼 풍경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긴 하나 이국의 새벽길이 그윽해진다. 은은한 은빛 부스러기들이 가득한 달빛 카미노, 마음도 은빛이다. 여섯시경의 길이 달빛으로 더 충만하다. 그동안 걸은 길 중 가장 긴 40킬로미터. 이틀 전에 35킬로미터를 걷고 나니 자신감이 생겨 40킬로미터에 도전해 보았다. 그런데 약간의 약이 필요했다. 지치지 않을 약. 노래였다. 걸으면서 음악이나 라디오 등 방송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리 준비한 몇 곡이 있었다. 그 중 한곡이 차지연의 목포의 눈물이었다. 누구의 목소리로 들어도 좋지만 차지연의 목소리는 더욱 차지다. 차지연은 절절한 노랫말을 충분히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일까 반복해서 들을 수록 더욱 애절해지는 까닭은.

달빛 카미노



어제 묵은 까리온 에스피리투 산토 숙소의 침대는 단층으로 청결하고 쾌적했다. 2층을 썼던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의 휴식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함께 숙소에 들었던 글라라씨 송희씨와 함께 숙소벤치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노을과 함께 저물어가고 볕좋은 마당에서는 순례자들의 옷이 기꺼이 말랐다. 어느날 보다 보송보송한 순례길이었다. 오늘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녀들의 나직나직한 목소리가 스친다.

시작점인 까리온부터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까지 17킬로미터 동안은 그야말로 마을도 없고 상점도 없었다. 오로지 평야와 길, 들판, 띄엄띄엄 서있는 나무들 뿐이다. 묵묵히 이 모든 것들을 수용하고 즐기며 사이사이 지루함, 힘겨움도 함께 걸어야 한다. 다행히 8킬로미터 지점에 푸드 트럭을 세우고 아침거리를 파는 이가 있어 지평선을 지피며 오르는 아침 햇살의 각도를 관조하며 진한 커피를 한 잔 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의 반복.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 쯤 도착하니 성당의 종소리가 열시를 알려준다. 마을로 들어갈때면 가장먼저 보이는 것이 성당의 첨탑이다. 마치 잘 보이는 곳에서 이 녀석들이 어디쯤 오나 신이 손차양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만 같다.

수평, 빛의 각도



비고와 에브로벨리를 잇는 N120번 도로와 함께 걷는다. 레디고스 어여쁜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사하군까지 내리 걷는다. 이전의 카미노 N120번 도로를 따라 가니 자동차소리에 숨소리도 묻히고, 그저 침묵 속에서 각자의 생각들을 짓다보면 어느 새 저 멀리 도착지인 사하군이 보인다. 오후 네 시, 아침 여섯시 경에 출발했으니 열시간 째 길 위에 있다. 길고 길었던 목적지가 보이자 긴장의 끈이 끊어지듯 아이도 나도 지쳐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급기야 딸아이는 한낮의 더위에 몸살기까지 있어 구토증세가 나타났다. 물을 마시는 일 말고는 조금이라도 빨리 사하군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공용 화장실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각자 알아서 볼일을 봐야 하는 일 같은건 그저 순례길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그 동안의 불만들이 그러려니 되어가는 즈음이었다.

끝 없는 길은 멀미가 일고



사하군 입구는 건조하게 보였으나 도시 안으로 들어갈수록 오밀조밀 다양한 건축들이 눈에 띈다. 돌보다는 벽돌을 사용하여 짓는 로마네스크-무데하르 양식의 건물들과 다양한 높이의 탑, 아치들은 사하군의 독특한 건축양식이란다. 16세기 군사 건축을 보여주는 이스빠노 궁전은 당시 도시 건축의 좋은 본보기라고. 그렇기에 예술을 사랑하는 순례자라면 산띠아고를 향해 가는 길에 반드시 들려야 하는 도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숙소에 도착하니 여섯시가 다 되었다. 예약을 해 놓아 10유로에 2인실을 쓸 수 있었다. 물 한 잔의 환대와 자세한 설명, 미사,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저녁일정을 보낼 수 있도록 짜여져 있.

길고 힘든 하루를 저녁 여섯시반 미사로 마무리 지었다. 오롯이 순례자를 위한 미사였다. 에스파뇰과 영어를 섞어 미사를 주례하시고 수녀님과 함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며 축복해 주셨다. 우리는 오늘 하루지만 매일 순례자들을 위해 처음인듯 정성을 다하는 것 또한 감동이었다. 미사는 어떤가. 다국적이어서 '아멘' 외에는 각자의 언어로 미사에 참례한다. 프랑스어, 이탈리어, 독일어, 영어, 에스파뇰 그리고 한국어. 미사중 문득 주의기도를 하는데 모두 다른 언어로 바치는 주의 기도가 오히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신비로운 공동체성이었다.

금빛이 감도는 성당이 따듯하다.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이틀치 양식을 구입하여 손바닥만한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굽고 샐러리, 볶음햇반 등 진수성찬으로 저녁을 만들어 해결했다. 아이의 몸살기로 함께 하지 못했지만 숙소의 큰 주방에서는 순례자들이 각자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며 순례의 길을 나누느라 왁자지껄하다. 주방이 있는 알베르게에 들어가면 입맛에 맞는 것을 만들어 먹는 것이 오히려 비용도 저렴하고 든든하다. 오늘은 걷는 일도, 저녁 짓는 일도 트롯가락에 맞춰 하루를 마무리 했는데 약발대신 먹발로 아이는 몸살기를 온전히 이겨낼 수 있었다.


('22. 1013, , 걷기 17일째, 4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