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서너 번이나 먹을까 말까 하는 라면을 이곳에 와서 일주일 동안 두 번째 먹는 날이었다.
부르고스의 아시안 마트에서 거금 5유로에 산 라면 두 개를 소중히 간직하다 이틀 전 프로미스타에서 한 개를 텄다.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든든했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막 끓인 라면에 밥을 말아 먹으니 걸인의 찬이었으나 황후의 밥이었다. 그리고 오늘 사하군을 출발해 17킬로 지점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라면을 파는 바를 발견했다. 라면을 그리 즐겨먹지 않고 먹은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미리 먹어두자는 심산으로 두 번 다시 먹을 수 없을 것처럼 맛있게 먹고 말았다. 끓인 라면 한 개에 만원에 가까운 5.5유로였다. 익숙한 음식으로 채운 속은 어느 때보다 든든했고 편안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라면 한 그릇의 행복도 잠시
엘 부르노 라네로 마을에서 레리에고스까지는 13킬로미터. 이젠 이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여전히 하늘은 맑고 밝았으며 아직 메세타 지역이어서 광활한 고원의 평야를 걸었다. 8킬로미터쯤 걸었을까. 저 앞 길 양쪽으로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건조한 들판을 걷다 오아시스처럼 반가운 자작나무 숲은 아직 가을이 닿지 않았는지 푸른 잎들이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후의 피곤은 걸음을 점점 더디게 하였지만 마음은 자작나무 잎들처럼 푸르게 나부꼈다. 저 숲만 지나면 레리에고스가 나오겠지 하는 기대로 발걸음도 가벼워지기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숲에 가까워졌을까. 밴 트럭 한 대가 왼쪽 들판으로 진입해 서더니 운전기사가 숲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왜 차를 저기에 세우고 숲으로 가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다른 길이 없어 좀더 천천히 걸었다. 두려운 마음도 무서운 마음도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숲에 가까이 닿을 무렵 갑자기 딸아이가 ‘엄마 보지마 저OO 완전 벗고 있어’. 뛰다시피 숲을 지나서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섞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트럭운전사는 어느새 옷을 입고 트럭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때마침 쉬고 있는 순례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스페인 사람이어서 경찰에 신고를 해 주었고 딸아이와 한참 통화하더니 5분도 안 돼 경찰이 도착했다. 정황설명을 다시 하고 여권을 보여준 후 경찰은 돌아가고 스페인 순례자는 우리와 함께 레리에고스까지 동행해 주었다.
출동한 경찰
도착지까지 겨우 5킬로미터 정도 남았는데 우리는 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그곳으로부터 도망치듯 걷기 시작했다. 혹 그 트럭이 다시 올까 두려운 마음에 지나가는 차마다 유심히 살펴보기를 수십 번. 남은 거리가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10킬로미터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겨우 도착한 목적지. 그때서야 비로소 여러가지로 도와준 그 순례자의 이름을 물을 수 있었다. 후안. 묵주를 꺼내며 기도하기 위해 부르고스부터 걷고 있단다. 함께 걷는 중에도 성가를 작게 켜놓고 우리가 진정되길 기도했다고. 음료한 잔 대접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들이 아르헨티나에서 모두 이주해 와서 살고 있고, 부인이 다음마을에 먼저 가 있어서 더 가야한다며 대신 사과를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석양쪽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덕분에 마음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안심하고 숙소에 들수 있었다.
세상에는 대부분 선한 사람들이고 그들로 인해 악이 상쇄 되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스페인 사람이면서 한 사람은 악을 행하고 한 사람은 선으로 악을 지웠다. 어쩔 수 없는 선과 악의 공존일 수밖에 없는 것. 라면의 맛도 아름답던 자작나무 숲도 기억속에서 멀어져 버리고 악을 행한 그 트럭운전사만 기억에 남은 하루였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라면 한 개는 어쨌냐고? 지금도 내 배낭 맨 안쪽에 고이 모셔져 있다. 날 것으로 먹고 싶은 유혹도 들지만 아직까진 잘 참고 있다. 덕분에 휴지 한 장도 덜어내야 하는 배낭의 무게도 즐겁게 감내하는 중이다. 만약 이 라면을 맛있게 먹는 날, 그날은 특별히 조심히 걸어야지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