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이제
제법 기특해지기로 했다.

다시, 산티아고 23. 산 마르틴에서 아스토르가

by 지상

어젯밤 천둥번개와 장대비가 무섭게 내리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 아침에는 달빛 별빛이 서성이고 있다. 하늘도 쌓인 게 있었던 거지, 그리 쏟아내야 맑은 모습을 내 보일 수 있는 거라 생각하며 길을 시작한다. 비는 예상대로 추위를 얼마쯤 당겨왔나 보다. 장갑을 꼈다. 아침을 거른 채 두 시간을 걸어도 이제는 몸도 걸음도 가볍다. 머릿속도 간결하고 정연해진다. 비움에 익숙해지고 있다.

어제 왔던 길 위로 이어진 길을 계속 걷는다. 도로를 따라. 한동안 휴대폰 전등으로 길과 주변을 밝힌다. 오늘따라 앞뒤로 아무도 없다. 언제나처럼 시작 기도를 마치면 아이와 나 사이에는 깊은 침묵이 돋는다. 성격이 비슷한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함께 어둠을 비출 뿐이다.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 지금을 생각하면서.

산 마르틴의 아침



어느 정도 어둠이 가시고 첫 번째 마을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 도착했다. 두 개의 마을이 스무 개 남짓한 아치형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카미노에서 가장 긴 다리 그 아래로는 오르비고 강이 흐르고 강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전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후안 2세 시절, 기사 돈 수에로 데 끼뇨네스는 그의 연인인 도냐 레오노르 데 또바르와 약속을 한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매주 목요일 목에 칼을 차고 다니기로. 만약 약속을 어기면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거나 다리에서 한 달 동안 결투를 하기로... 돈 수에로는 이 약속을 지키는데 지쳐서 싸움을 허락해달라 왕에게 요청하고 마침내 1434년 7월 10일부터 8월 9일까지 한 달간 결투 벌인다. 사상자를 남긴 싸움이 끝나자 돈 수에로는 목 칼을 벗고 자유의 상징인 은 족쇄를 성 야고보에게 바치기 위해 산티아고로 순례를 떠났는데 현재에도 산티아고 대성당에는 그가 바친 족쇄가 보존되어 있단다.(출처,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오르비고



긴 다리의 끝 카페에 앉아 사랑의 위대함과 무모함을 생각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사랑, 요즘 같으면 전설이 아닌 사건이 될 것 같은 그 사랑에 차라리 씁쓸한 것은 나 역시 요즘 사랑에 익숙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카페 창문으로 막 들기 시작한 빛, 정갈하게 정돈된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몇 개의 마을을 돌아가는 길이 아닌 도로를 따라 걷는 루트로 진입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도착지인 아스토르가 전 베가에 이르는 12킬로미터 지점까지는 마을도 순례자도 없다. 이정표가 없었다면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여서 괜스레 겁이 났다. 지난주 맞닥뜨린 일로 인해 숲이 있을 때마다 혹여 하는 마음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길 몇 번.

드디어 저 멀리 아스토르가와 베가가 보이는 언덕에 도착하니 마중하듯 성 또르비오의 십자가가 서 있다. 한참 십자가를 응시해 오늘 걸음도 무사한 것에 감사드린 후 내려오니 한 노인이 기타를 켜며 노래 부르고 있다. 말하자면 길거리 공연 중이고 돈을 내야만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참 하느님의 묘안도 신박하시지, 감사 후 한껏 말랑말랑해진 마음으로는 관람료를 내지 않을 수 없게끔 손을 쓰신 것. 흔쾌히 관람료를 치르고 그 길을 통과했다.

저 멀리 아스토르가가 보이는 십자가 언덕

길을 가다 보면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작은 돈이라도 앞에 놓았다. 머리가 커지고부터는 왜 내가, 당연히 국가책임이거나 당신도 일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지나쳤다. 사실 못 본 척 그 앞을 지나칠 수 있는 이유는 열 가지도 넘었다. 그중 가장 합리적인 이유는 ‘돈을 주면 저 사람은 평생을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저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었다. 얼마든지 무관심할 수 있는 그럴싸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안 편했다. 돈을 놓지 않은 이유는 그저 핑계라는 걸 나도 알고 그도 알고 하늘도 아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 돈을 놓을라 치면 용기가 필요했다.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데 주섬주섬 돈을 꺼내 그 앞에 놓는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부터 나는 제법 기특해지기로 했다. 그의 몫은 그의 몫이고 내 몫은 내 몫이므로.


공립 알베르게로 들었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등록을 하고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받은 후 봉사자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2층 침대가 그 자태도 아름답게 딱 하나 놓여 있는 2인실이었다. 아이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봉사자에게 고맙단 말을 다섯 번쯤 했다. 봉사자도 기분이 좋은지 이탈리아에서 왔다며 이름까지 알려주고 나갔다. 아이와 나는 배낭을 짊어진 채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공립 알베르게는 한 공간에 작게는 8인, 많게는 100인까지 쓰는 다인실이다. 더 비싼 사립도 4인실, 6인실이 대부분이고 비용을 추가 지불해야만 2인실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이곳 아스토르가 공립 알베르게에서 7유로에 2인실을 쓰게 되다니 착한 일 했다고 상 주셨구나 싶어 더 착하게 살아야지 굳게 다짐했다.

아스토르가로 들어가는 입체적인 육교



손빨래한 옷가지들을 널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양쪽으로 빨랫줄이 있고 중앙으로는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볕 좋은 전망이 눈부셨다. 바람에 날리며 기분 좋게 말라가는 옷가지들 곁에서 아스토르가 경치에 빠져보았다. 매일이 같은 듯 다른 마을, 다른 풍경, 다른 생각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오후 4시에 문을 여는 가우디가 설계해 지금은 카미노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는 주교궁,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합 건축된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둘러보기 위해 아스토르가 햇볕 속으로 총총히 들어갔다

산타 마리아 대성당


(''22년 10월 18일, 화, 걷기 21일째, 24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