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죽었다.

다시, 산티아고 28. 리냐레스에서 사모스

by 지상

오전 8시, 아직 어두웠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했던 전날의 여유가 눈 뜨기도 전에 걱정거리가 되어 있었다. 걱정을 당겨서 할 수 있다면, 다음날의 걱정도, 내년의 걱정, 10년 후의 걱정들을 미리 해 놓는다면 그래서 걱정들이 다 닳아 사라진다면... 또는 미리 해 버린 걱정들을 적금처럼 조금씩 빼내 쓸 수 있다면.. 씨 알맹이 없는 생각이 절로 드는 아침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비바람에도 배낭을 꾸리는 나를 보고 어느 순례자는 하루 더 묵어갈 것이라며 걱정해 주었다. 날씨로 인해 하루 더 머무는 일은 내 사전에 없었으므로 그래봤자지, 싶은 마음으로 짐을 쌌다. 몇몇 순례자들도 일찌감치 준비를 마치고 쉽게 문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종일 비가 내린다는 예보도 있고 ‘Let’s go, I am the first.’ 문을 열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차가 뒤집히고 집이 날아간다는 것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세찬 바람이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조심조심 스틱을 단단히 땅에 박고 휘청이는 몸을 기대면서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했다. 비옷을 입었는데도 5분도 안 돼 옷은 다 젖고 신발 속까지 첨벙거리기 시작했다.

비바람에 절반 이상 찢겨나간 파란 크롭 우의



그렇게 9킬로미터를 걷고 1500미터 고지에 한 채 덩그러니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아, 벽난로의 따듯함이라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난로 앞을 비워준 후 다시 채비를 하고 나는 겉옷이며 배낭을 난로 앞에 놓아두고 따듯한 커피에 속을 데웠다. 창문 밖 풍경은 저리 요란스러운데 이 순간 벽난로 앞의 평온함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신세계 같았다. 벽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콜택시 전화번호는 비바람만큼이나 내 마음을 흔들었으나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 맸다. 그럴 수는 없지, 지금까지 걸은 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홀딱 젖어 들어온 다음 사람에게 벽난로를 양보하고 다시 비바람 길에 들어섰다. 이미 비옷은 절반 이상 찢겨 나가고 얇은 바지 위를 때리는 빗방울은 매를 맞는 듯 아파왔다. 진퇴양난의 길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도 잠깐씩 바라본 먼 풍경은 면사포 같은 짙은 안개를 쓴 채 신비로운 자태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힘들려고 왔지, 이렇게 불편하려고 왔지. 이 또 한 지나갈 것이며 내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 완전히 비에 젖은 채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각이었고 참으로 그러길 바랐다. 날씨가 좋았다면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날이었겠지만 날씨가 궂은 대로 의미를 찾았다. 그러니 삶은 ‘생각대로’이고 내가 만들어 가는 것.


뜨리아까스텔라까지 세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 19킬로미터를 걸었나 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이 마을에서 묵지만 점심을 먹고 사모스로 향했다. 다행히 사모스까지는 비가 오지 않고 점점 구름이 비끼더니 푸른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 갠 후의 날씨는 보상이었고 축복이었다.

언덕에 서서 목적지를 내려다볼 때의 기분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고생으로의 떠밈, 그것을 잘 이겨낸 대견함 같은 것이랄까, 오늘도 무사히 도착했구나 싶은 뭔가 촉촉해지는 만족감이랄까. 처음 보는 순례자에게마저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달달한 뿌듯함 같은 것이 속 깊은 곳에서 밀고 올라온다.

산실 루트보다 5킬로미터가 더 긴 루트인 사모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크다는 사모스 수도원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꽤 큰 규모의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도원의 바깥뜰은 낮에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은 채 낙엽들이 수북하고 버스에서 내린 여남은 명의 관광객들이 수도원을 두런두런 둘러보는데 들어갈 수 없는 수도원 저 안쪽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도자들의 그레고리안 성가가 환상적이라고 소문이 나 있음에도 사제 혼자서 주례하는 미사는 겨우 대여섯 명 정도 참례할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하느님을 독차지한 채 더없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언덕위(오른쪽)에서 바라본 사모스 수도원



결국 핸드폰은 제기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빗물에 젖은 휴대폰에 몇줄 무지개가 뜨더니 장렬한 먹통이 된 것이다. 그 막막함을 어디에 비길까. 현금을 인출해 쓰는 일도, 글을 쓰는 것도, 메모도, 사진 찍는 일도, 길이나 도시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도, 일정을 확인하는 일도, 사람들과의 소통도, 업무도 모두 끝나버리고 말았다. 쥐고 있는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듯 마음까지 길을 잃은 채 갈팡질팡이었다.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그저 숨만 쉴 뿐이었다. 아이의 휴대폰에 모두 기대고 나는 귀국까지 2주일, ‘휴대폰 없음’에 익숙해져야 했다.


(22년 10월 23일, 일, 걷기 26일째, 3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