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해도 옆에 살아!!!

다시, 산티아고 31. 팔라스 드 레이에서 아르 주아

by 지상

용하다는 '진주씨'네로 사주를 보러 갔었다. 결혼 전에 안 본 사주 결혼 후에 본들 뭔 좋은 일이 있을까 싶어 몇 번이나 유혹을 떨쳐냈던 일이었다. 또 이렇게 안 맞는데 어떻게 사냐고 되레 물을까 봐 몇 번 마음을 접은 후였다. 좋은 일이 없어도 어떤 질문을 한다 해도 한 번쯤은 봐야 속이 풀릴 것 같아 찾아간 참이었다. '진주씨'는 한마디로 말했다.

'이혼해도 옆에 살아!!!!'


남편과 나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삼십 년을 함께 산 지금도 공통점이 없다. 취미생활, 경제관념, 육아, 종교마저도 다르다. 생각하는 것도 달라서 다섯 고개도 넘기 전에 대화가 끊긴다. 겨우 아이들, 가정사, 직장 얘기들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왜 결혼했냐고? 다 그렇듯 그때는 콩깍지가 씌었고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서야 원래 없었던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 원래 못했던 일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것, 새 사람이 되었다는 거짓말 같은 기적은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부부는 각자도생 하며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살았다. 사는 게 기적이었지만 그 기적은 그저 엮어진 게 아니었다. 많은 순간, 많은 일 속에서 엄연한 잘못들을 서로 못 본 척 눈감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답답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을 짓눌러 숨까지 막혀올 때가 있었다. 잘못을 눈감아야 하나, 눈 뜨고 해결해야 하나... 눈감는 일도, 눈 뜨는 일도 생채기를 냈고 흔적을 남겼다. 한 번 두 번 못 본 척 넘어가기 시작했다. 알면서 눈을 감는 것과 못 본 척 넘어가는 것은 달랐다. 전자는 이해 쪽에 가깝지만 후자는 포기 쪽에 가까웠다. 일일이 말을 하자니 입이 아팠고 속은 뭉개졌다. 그래서 본 사주였는데 이혼해도 옆에 산다니... 당신 진짜 맞냐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딸아이가 어느 길 위에선가 반 농담 삼아 물었다. '엄마, 다시 태어나도 아빠랑 결혼할 거야?' '응'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아이는 아빠에게 말해줘야지 하며 웃었지만 그 말은 그 말이 아니었다. 다시 태어나 꼭 결혼을 해야 한다면 이미 다 아는 남자, 그래서 손이 덜 갈 것 같은 남편이랑 한다는 거였다. 누군가를 다시 알아가고 맞춰야 하는 우주보다 크고 어려운 숙제는 두 번 다시 내 삶에 부과하진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아르주아로 가는 길, 그저 이 길과 풍경이 나를 불렀다


생장에서 출발하기 위해서는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등록을 해야 한다.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해야 하는데 왜 왔는지 묻는 문항이 있다. 종교, 문화, 영적인 이유.... 나는 잠시 머뭇했다. 왜 왔지? 다시 질문해 보았지만 제시해 놓은 내용에서는 적당한 답이 없었다. 그저 빈칸 하나 만들어 놓았다면 좋았겠다 싶었다. 이후에도 만나는 사람마다 왜 카미노를 걷는지 물어왔다. 그때마다 그냥 좋아서, 이전에 왔는데 다시 오고 싶어서, 그리워서.... 등으로 대답을 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그리움이었다. 걸었던 길, 다 걷지 못한 길, 풍경, 바람, 햇살, 도시들, 아침들, 걸음 끝 통증까지도 그리웠다. 일에 떠밀려 살면서 가끔 인터넷에서 접한 산티아고 가는 길은 숨이 멎을 만큼 그리웠다. 그리고 결코 가볍지 않은 카드값을 남겼지만 그 그리움을 돈으로 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썩 공감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문우답, 난감한 질문에 애매한 답하기를 몇 번.



아르수아에 도착했다. 31일째, 산티아고 도착을 하루 앞두고 있었고 피니스테라까지 4일 남겨두고 있었다. 800km의 끝 지점에서 나 역시 문득 좀 더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그리움을 조금씩 상쇄하며 그날그날 하루치 걸음을 무사히 완주하는 것, 40킬로미터가 넘게 걸은 날은 해 내야 한다는 부담만큼이나 해냈다는 성취감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 얹힌 듯 복잡하게 막혀있던 내 삶이 조금씩 비어 가는 것에 의미와 목적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조금은 어엿하고 기특한 무엇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일까.

문득 그라뇽에서 만난 순례자의 말이 생각났다. 산티아고로 향한 모든 길을 걷고 기도하고, 걷고 기도한다던... 그때는 무슨 기도할 일이 그리 많을까 싶었다. 오랜 시간 사주쟁이의 한마디에 묶인 듯 삼키고 포기하며 살아왔던 기억을 치우고 처음으로 남편을 위해 미사를 드렸다.

멜리데의 뿔뽀


잠깐 쏟아진 비로 인해 초록 풍경은 더욱 선명하고 구름 비낀 하늘은 더욱 푸르렀다. 모든 길이 좋았다. 아르주아 도착 전 마을인 멜리데에서 점심 삼아 먹은 뿔뽀는 14년 전 처음 먹어본 후 한국에 돌아와 만들어 먹었을 때 니 맛도 내 맛도 아니었던 기억을 말끔히 지우고도 남을 만큼 맛있었다. 딸아이가 뿔뽀를 그토록 그리워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또 하나의 그리움을 상쇄한 날이었고 또 하나의 목적을 만든 날이었다.


(22년 10월 26일, 수, 걷기 29일째, 28.1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