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카드

다시, 산티아고 30.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드 레이

by 지상

내일 아르수아, 모레 몬테 도 고조에서 묵고 나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입성이다. 그 후에는 포르투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언젠가부터 땅끝 피니스테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라뇽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저녁식사 때 각자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까지 가는지 등 이런저런 카미노에 대해 나누었을 때 대부분 산티아고까지 간다고 했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프랑스에서 왔다는 순례자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피니스테라가 스페인 땅끝이라며 거기까지 가야 카미노가 더 의미 있다고. 그때 피니스테라, 땅끝이 내 마음에 들어와 콕 박히고 말았다.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어느 길 위에선가 툭 던졌다. ‘우리 피니스테라까지 걸을까?’ ‘아니’ 1초의 고민도 없이 거절이 돌아왔다. 그래 아무래도 무리지. 30일을 걷고 또 90킬로미터를 걷는 것은... 그런데 그 말이 생각보다 깊이 박혀있었던지 산티아고를 눈앞에 둔 직전까지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활성화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아이가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여행 중에 소원 하나씩 들어주기’. 흔쾌히 그러자고 했는데 이 카드를 꺼내 들었다. ‘피니스테라까지 걷기, 생각해봐’ 이미 한번 거절했던 터라 ‘생각해보라’는 조금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딸아이는 스스로 제안한 것을 거스르기 안됐는지 일정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르수아에서 몬테 도 고조까지 걷기로 한 것을 산티아고까지 걷는다, 순례자 사무실에 등록하고 저녁 미사에 참례한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출발한다, 라는 변경된 계획을 내놓았다. 단 한 장 소원 티켓까지 써가면서 땅끝까지 걷자고는 했지만 빠듯한 일정이었고 산티아고에서의 짧은 머무름이 아쉬웠다. 또한 순례자들이 많지 않을 것이어서 둘이 걷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이전과는 다른 염려와 망설임이 뒤따라왔다. 그렇지만 완성에 대한 기대감이 모든 것을 지우고도 남았다. 스페인 동쪽 국경에서 시작했으니 서쪽 끝에서 끝맺음을 해야 할 것 같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숙제 같은 부채감도 한몫했다. 그렇게 내 몫의 와일드카드는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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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을 나오며



도착한 팔라스 데 레이는 이전에 하루 머물렀는데도 한 장면도 기억에 없었다. 마치 그냥 스쳐간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마을을 돌아보는데 알베르게 장소, 라운드형의 도시 진입도로가 기억의 수면으로 떠올랐다. 맞아, 여기였지. 2층인가 3층 숙소에서 내려다보던 길, 광장.... 어떻게 하나도 생각이 안 났을까. 어쩌면 한 번 더 다녀가라고 무의식에 숨어있었나 보다. 잊힌 시간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이미 예약이 끝나 들어가지 못한 알베르게 앞이 시끌벅적하다. 며칠 전부터 같은 카미노 구간을 걷는 한 무리의 스페인 청소년들이었다. 덕분에 오늘처럼 알베르게를 잡는 것이 조금은 어려운 날도 있었지만 걷고 기도하고 토론하며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부럽기도, 부끄럽기도 했다. 미사에 참례하면서도 집중하는 그들의 모습은 휴대폰 기능을 상실했을 때 안절부절못한 나처럼 휴대폰 속에서 삶을 유영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내 탓이었고 어른들 탓이었다. 와일드카드를 하나 써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단 한 번 소원을 들어준다면 기꺼이 그리 쓸 것 같았다.


산티아고까지 이틀, 하필 겨울 초입에 마지막을 향해가는 아쉬움이 더욱 씁쓸하고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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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수아로 가는 길

(22년 10월 25일, 화, 걷기 28일째, 25.3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