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대형마트에 갔었다. 그동안 먹지 못했던 국민음식 삼겹살이라도, 그 비슷한 거라도 먹어야지 싶어 여기저기 기웃대고 있었다. 그때 한국인 한 분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렇다고 했더니 잠깐 망설임 끝에 산티아고에서 살고 있는 교민이라며 괜찮다면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갑작스런 초대에 당황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카미노에서 한국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때여서 반갑기는 했으나 걱정스런 마음이 앞섰다. 괜히 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아이들이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아이들이 괜찮다고 하고 사람을 앞에 둔 채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어 좋다고 했다.
태권도 학원을 운영하다가 침뜨는 일을 하는 남편, 두 자녀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구수한 된장찌개로 따듯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긴 타국생활로 고국이 그리운 한국인, 짧은 여행으로 내 집이 그리운 나그네의 진한 이야기들이 깊은 밤까지 오고갔다. 한달 가까이 수십 명 드는 알베르게에서만 자다가 포근하고 안락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여독이 다 풀린 듯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음날 다시 산티아고 시내까지 배웅 받으며 언니 동생이 헤어지듯 정든하룻밤의 인연을 새겼는데 한국에 돌아와 아무리 명함을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연락을 취할 방법도 감사를 표할 방법이 없었다. 단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분들의 따듯한 마음과 된장찌개, 김치 등 그날의 식사를 잊지 않을 뿐이었다.
아르주아의 쾌적한 숙소를 떠나 새벽부터 쏟아지는 빗길을 뚫고 몬테 도 고조 언덕에 서니 그 산티아고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길의 끝, 스페인어 권에서 산티아고로 불리는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곳, 각기 다른 이유를 품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출발해 약속한 듯 집결하는 곳. 잠시 걸음을 멈췄다. 숨까지 멈춘 듯 나도 모르게 스스로 고요해지면서 속이 울컥거리기 시작했다. 걸을 수 있을까 싶었던 첫날의 의구심도, 중단해야 하나 싶게 비바람 요동치던 날도, 몸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통증을 다스리며 왜 이곳에 왔나 자책하던 날도 모두 지나가고 없었다. 다 왔어 힘내! 이정표는 파이팅을 외치듯 더욱 선명하게 길안내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대성당 근처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담담했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등록 후 779킬로미터 완주증을 받았다. 마치 긴 주경야독의 졸업장을 받은 듯 뿌듯했다. 다시 오지 않을 지난날들과 함께 보관통에 고이 간직했다.
그날 등록한 순례자 수와 나라를 호명할 때 마음이 다시 시큰거리기 시작해 미사 시간 내내 눈물이 고였다. 가톨릭 미사 중에는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는 시간이 있는데 신자든 아니든 서로 포옹하며 멀고 힘들었던 순례길을 축하하고 공감과 동질의 평화를 나눈다. 딸아이는 내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더니... 등을 쓸어주며 친구였고, 동반자였고, 협력자였던 아이에게 고마운 내 마음도 전했다. 신비롭고 신기한 보타프메이로 의식 (거대한 향로를 그네처럼 태워 대성당 양쪽끝까지 오가게 함)으로 미사를 마쳤다. 더없이 거룩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니 성대한 자축을 해야 하는 날, 다음날 일정을 위해 예약해 놓은 수도원 알베르게로 이동해 남아있는 라면 한 개를 나눠 먹으며 산티아고 입성을 축하했다. 라면 냄비 하나, 접시 두 개, 젓가락 두 벌 뿐인 보잘 것 없고 허기진 식탁이었지만 그마저 없어도 좋을 만큼 흐뭇하고 마음이 부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