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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Feb 02. 2023

'이 과장을 보유한'
사회적기업 김대표입니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직원 면담 시간, 이 과장 차례였다. 회사 근처 한적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그녀와 김대표 사이 2,3초의 침묵이 지나갔다. 어떤 얘기도 좋으니 하고 싶은 말 다 하라고 멍석을 깔았다. 순간 그녀는 벌떡 일어나 휴지를 한 움큼 가져오더니 눈물부터 쏟았다. 어깨를 두들겨 주지도 않고, 이해한다는 말도 하지 않고, 다 안다는 표정도 짓지 않고 기다렸다. 눈물을 쏟고 빨개진 눈으로 첫마디를 내뱉었다.  


-제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부서장으로서 팀을 잘 이끌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팀장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고, 내가 끌고 가야 하는데 끌려가는 것 같고, 하고 있는 일이 팀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있나, 조직에는 도움이 되고 있나 확신도 안 서고..  

-지원사업들을 따오면 업무를 재분장해 주세요. 프로포절 작성하고 따오기까지 힘들고 어려운데 그 업무가 기존의 업무에 고스란히 얹히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연신 눈물을 훔치는 휴지가 구겨지고 잔 먼지들이 눈가에 맺혔다. 목소리는 자주 평정선을 이탈했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그러면 안 되었지만 풉, 웃음이 나왔다. 김대표는 그녀의 힘겨운 눈물이 오졌고 잘 성장하고 있구나 싶었다. 연말까지 마감해야 하는 몇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더니 자신감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안심이 되었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처럼 자신감은 가끔 떨어져야 맛이고 자고로 사람은 흔들려야 큰다. 어느새 제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 특유의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할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대표에게 할 이야기를 다 하는 직원은 흔치 않다. 어떤 얘기는 대표가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지만 그‘못마땅하게 여김’을 이겨내는 것은 직원의 의무 중 하나여야 한다. 또한 할 말을 하는 직원을 수용해야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표의 마땅한 권한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만만치 않은 ‘전’들을 겪은 김대표는 이런 직원들이 어떻게 성장할지 보인다. 



  말단부터 일을 시작한 김대표가 겪은 첫 ‘전’은 꽤 나이가 있는 상사에게 대든(?) 것이었다. 생각하기에 지나친 요구에 따르라는 것이었는데 그런 일에 쓸 인내심이나 여유 같은 것이 눈곱만큼도 없이 젊었던 김대표는 그럴 수 없다고 논리적 거부를 했다. 그 이후로 종종 그 상사와의 마찰이 이어졌고 좋게만 마무리되지 않았다. 급기야 서류를 집어던질 정도로 일이 커진 적도 있었고 그 상사가 하는 말을 듣다 토할 때도 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의 퇴임으로 갈등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할 말을 한 때문’이었다고 김대표는 확신한다. 어차피 일 좀 한다고 나대는 인간은 이러나저러나 미움받는 것은 매한가지. 차라리 할 말은 하는 게 나다운 것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대신,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하고 버금가는 성과를 내야 했다. 



 이 과장은 어느 해보다도 못한 해였다며 자신에게 준 점수는 40점이었다. 그때도 김대표는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염려도 되었다.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짜고 엄격한 성정 때문이었다. 그러한 성정이 얼마나 스스로를 닦달하고 못살게 굴지 눈에 보듯 뻔했다. 생각지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순간순간 김대표를 일깨워주는 그녀였다. 일을 못한다는 의심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그녀에게 김대표가 해야 할 일은 어떤 말이든지 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질문하고, 되묻고, 기다리고, 침묵하고... 

‘명령’으로 면담을 마무리했다. 스스로를 갈구지 마라, 스스로를 칭찬해라. 힘들다고 말해라.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폭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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