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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Feb 14. 2023

'들이댐'의 정석

 ‘들이댐’ 끝판왕! 

김대표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전 직원이 모여 각 부서의 서비스 질, 내용, 방법 등을 논의 중이었다. 유독 목소리가 크고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의 설명은 다른 직원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도 남았다. 

  정상화(Normalization) 이론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운동으로 Nirje와 Wolfensberger에 의해 발전했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장애인복지의 키워드로 작동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우리 기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업계획의 배경에, 대부분의 회의에 핵심적으로 오르내렸다. 그러니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발표였다. 그러나 새로운 이론 혹은 모델은 또 다른 이름으로 대상자를 특정한다. 그리고 그 특정에는 혹독한 분리가 뒤따른다. 그 지점을 지적했다. 계속되는 내 질문에 설명에 설명을 거듭했다. 어느새 열띤 토론을 넘어 그녀도 김대표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오래된 직원들은 익숙하게 상황을 즐기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직원들은 숨을 죽였다.   

 ‘나를 설득시켜라’는  김대표의 좌우명 같은 말을 그녀는 제대로 써먹고 있었다. 설득시키지 못하면 모든 내용을 뒤집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김대표도 그리 쉬운 사람은 못되어서 쉽사리 설득당하지 않았다. 그 대표에 그 직원이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고 수순처럼 중간관리자들이 의견을 보태 흥분되고 양분된 토론의 장이 되었다. 무승부였다. 직원들의 의견을 밑바닥까지 끌어낸 것만으로 성과라면 성과였다.  

 그러나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평소보다 긴 메일이 그녀로부터 도착해 있었다. 분명 늦은 시간까지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말로도 설득당하지 않은 징그러운 대표 때문에. 분한 무승부 때문에. 이거지, 김대표는 빙긋 웃으며 메일을 열었다. 

  오래전 일이라 그녀에게 온 메일은 없는데 답 메일은 있어 살짝 공개한다.  



정상화 원리가 나쁜 게 아니고

또 1팀에서 잘못 선택한 것도 아니야

......

정상화 원리를 얘기하기 전에 사회가 장애인을 낙인찍지 않았다면

그러한 원리가 나왔을까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삶을 살고 있다면 장애인복지법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 말이야

 최소한 복지의 핵심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

어제의 지적이 1팀한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

..........

직원들도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나도 이런 메일을 받고 반성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니까.

밥 한 번 먹자

 


밥을 샀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욕심, 상처, 반성, 밥 먹자’는 내용들로 보아 그녀의 판정승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즐거운 패배였다고 김대표는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메일 끝에 따라오는 글이다. 평소 그녀의 삶의 자세를 보는 것 같아 김대표도 힘이 난다.  


  발령으로 인해 함께 일을 안 한 지 오래되었지만 김대표는 여전히 그녀의 ‘들이댐’을 높이 산다. 뭐라도 할 녀석이었고 뭐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중요한 건 ‘들이댐’도 급이 있고 종류가 있다는 것. 들이대는 그 일을 섭렵하고 있어야 하고 어떤 질문을 해도 능통해야 한다. '들이댐'의 정석이라면 정석이다.  


나중에 어떤 직원은 이 토론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아, 대표에게 대들어도 되는구나!

 ‘도대체 그 들이대는 아름다운 태도는 누구한테 배웠냐’는 질문에 누구긴요. 대표님께 배웠죠. 그녀의 일갈에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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