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그만둔 지 9년이 넘었다. A는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기업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다시 이직을 하려는지 이력서를 넣은 곳마다 A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매번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김대표는 곤란했다. 그만 둔지 오래되기도 했고, 그때 성향들이 아직도 그대로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실적인 장, 단점을 말해주고 오래전에 일했던 직원이라 그마저 확실치 않다고 첨언했다. 불합격하면 A에게 미안해지고 합격하면 잘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에 조금은 부담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A와 기업이 상호 우울하게 헤어진 사례다.
수습을 채 마치기도 전에 퇴직한 C는 한마디 말도 없이 단톡방을 나갔다.
직원 모두가 손 편지를 써서 건네며 건강히 잘 지내라며 따뜻하게 보낸 후였다. 그래서였을까. 10주간 일 하면서 아니, 코로나로 7일을 쉬었으니 9주 동안 나름 C에게 정성을 쏟고 키워보고자 했던 김대표의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텅텅 빈 말이라도 ‘그동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라는 한 마디 정도 남기길 바라는 마음이 꼰대기질 때문이라고 해도 뭐 어쩔 수 없다. 인정한다. 쫀쫀한 근육처럼 붙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꼰대성을 김대표도 어쩔 수 없다. 나중에 혹, 어딘가에서 C를 묻는 전화가 온다면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김대표는 벌써부터 난감해진다.
D와 면접을 보면서 의아했다. 동종의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곳을 그만두고 왜 이직을 하려고 하는지 말이다. D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면접을 마친 후 최종 결정을 앞두고 D가 근무했던 기관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한마디로 ‘놓치기 아까운 직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D는 입사 3년 차를 씽씽 쌩쌩 보내고 있다. 김대표도 놓치기 아까운 직원이어서 더 키우고 싶다. 놓치기 아까운 직원이지만 더 좋은 자리, 더 높은 자리로 보내고 싶다. D는 지금도 전 직장의 직원들과 정보교환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뽀송뽀송 그만둔 모범적인 사례다.
그만두는 직원도 남는 직원들도 상호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일 보다는 사람관계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그렇게 그만둔다. 그런데 그만둔 후라도 연락할 일이 있기 마련이고 같은 업계면 부딪힐 일이 더더욱 많다. 싹둑 자르지 마라. 휑, 나가지 마라. 살면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어찌 알겠는가.
좋은 직원을 잡으려는 대표들의 보이지 않은 손의 네트워크는 생각보다 잽싸고 약삽 빠르다. 어느 날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만두고 회사의 정문을 나오는 그 순간까지 명랑 쾌활하게 일해야 한다. 누구 좋으라고, 뭐가 좋다고 그러느냐고? 물론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고도 명랑 쾌활하게 일할 줄 아는 직원을 보내야 하는 대표의 속이 뭐가 좋겠는가. 서운하게 혹은 치고받고 싸우고 그만둔다 해도 이를 악물고 명랑 쾌활해야 한다. 자신의 핑계가 더 합리적이라고 결정짓지 마라. 누구의 동의를 구하려고 애쓰지도 마라. 사표의 이유, 책임, 뒷감당은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이 깔끔하다. 그것이 유능한 당신을 그만두게 한 대표에 대한 복수다. 그것이 당신을 놓친 대표에게 후회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왜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