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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Mar 07. 2023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역설

  중간관리자는 권한보다 책임이 더 큰 자리다. 특히 손바닥만 한 조직에서는 더 그렇다. 나아가 바라는 바는 큰데 보상은 미미하다.

  김 대표 역시 스펙터클한 말단과 중간관리자 시절을 보냈다. 차를 타내거나 청소 같은 본업 외 일부터 회계, 홍보, 후원자 관리 등 간접 서비스의 모든 것은 물론, 돌봄이라는 직접서비스까지. 하긴 본업이라는 것도 모호해서 닥치는 대로 했다는 것이 더 맞겠다.  수당도 없는 시간 외 근무는 그저 일상이었다. (요즘 제시된 시간 외 근무 시간에 대한 수당제는 일이 있으나 없으나 채우는 돈 주머니 같은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연봉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어느 휴일, 직속 상사로부터 홍보지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연락이 왔다. 아무 소리 못하고 출근해야 했다. 빨간 날이었지만 모든 날이 검은 날과 진배없었다. 그렇게 5년을 보내고 나니 자연스럽게 중간관리자가 됐다. 당시 중간관리자인 김 대표가 자리에 없으면 불안하다는 상사의 요구나 주문은 시도 때도 없는 업무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빡세게’ 보낸 말단부터 중간관리자까지의 시간은 산전, 수전, 공중전의 시간이었다. 없는 것을 만들어야 했고 없는 길을 내야 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김 대표에게 기본기는 물론 업무 관련 스킬, 창의력까지 챙길 수 있었던 중요한 시간이었다. 내 일도 아닌데, 왜 내가, 쉬는 날인데, 수당도 없는데 등등 댈 수 있는 불만은 백 가지도 넘었다. 사표를 써서 컴퓨터 깊숙이 보관해 놓고 여차하면 멋들어지게 던지고 나가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순간순간의 힐링이었다.  무슨 일을 했어도 부자가 됐을 거라고 진담 같은 농담도 여러 번.

 업무분장도 하기 어려운 비체계적이었던 시절을 찬양하거나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표라고는 하나 여전히 월급쟁이에 불과하고 법인이나 지자체의 눈치를 보며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자리에 있다. 여전히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산, 수, 공중전을 치르는 중이라는 뜻이다. 세상에 어떤 자리도 책임 없는 권한은 없다.



  지극히 일 중심적인 김 대표는, 승진은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위주여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인사위원회의를 하다 보면 대부분의 위원들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며 입사 순, 나이 순의 조건을 단다. 실제로 능력위주 승진을 시켰다가 누락된 선 입사자의 울퉁불퉁한 언행에 못 이겨 동급으로 승진시킨 일이 있었다. 최고 중간관리자가 된 ‘울퉁불퉁’은 예상치 못한 생각과 언행으로 모두를 힘들게 했다. 결국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직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순, 입사순, 나이순을 충족하고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가. 한 가지를 만족하면 한 가지는 부족한 것.


  결국 세 가지를 충족하려면 산, 수, 공중전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 슬기롭게 그 전들을 치러야 한다. 울퉁하게도 말고 불퉁하게도 말고 매끄럽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정’이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인정과 자리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다.

  야마구치 슈/ 구스노키 켄은 그들의 저서 '일을 잘한다는 것'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기술이 아니라 감각에 있다고 주장한다. 계량화할 수 있는 기술보다는 계량화가 어려운 감각을 더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과장, 실장, 국장들은 그 직책의 무게감을 잘 소화해야 하는데 ‘잘’이라는 의미에는 '감각'을 키워야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김 대표는 분기마다 팀원들과 티 타임을 통해 중간관리자와의 관계를 점검하고 문제는 없는지 파악하는데 중간관리자의 예상치 못한 언행과 생각들이 밝혀진다. 어떤 중간관리자는 자리나 지키며 팀원 의견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자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최악의 중간관리자다. 주어진 일이나 겨우 하고 있는 중간관리자들은 진지하게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럴진대 만약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면 그들은 모두 훌륭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중간관리자의 능력에는 업무의, 업무에 의한, 업무에 대한 창의력이 더 비중 있게 더해져야 한다. 보이는 일(기술)에 보이지 않는 일(감각)을 더해 확장된 생각들을 직원들과 공유하며 완전하게 다듬어 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간관리자라는 자리의 반경을 무한대로 넓혀야 하는 것이다.      

 조직의 승진체계에 대한 불만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업무능력과 업무 자세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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