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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Feb 10. 2023

심증, 섣불리 파헤치면 안 되는 이유

  해 질 녘이었다. 동생은 보이지 않고 부모님과 두 오빠가 안방에 모여 있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낮과 밤의 경계선 때문이었을까. 오래된 한옥의 어둠이 더 어둡게 느껴졌는데 백열등도 아직 켜지 않은 채였다.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두어 번 치더니(무엇보다 그날의 아버지 손가락이 선명하)  ‘앉아보라’고 하셨다. 앉아라, 가 아닌 앉아보라, 는 말, 평소보다 근엄한 말투, 분위기.. 어린 나이에도 뭔가 좋지 않은 조짐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읍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큰오빠는 토요일 날 집에 왔다가 일요일이면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당시 버스 값이 삼십 원이었다. 아버지는 그 돈을 안방 선반에 준비해놓았다가 집을 나설 때 주곤 했는데 그 돈이 사라진 거였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만, 동생은 어리고 모범생인 작은오빠는 그럴 리가 없다고 이미 결정후여서 아무리 안 가져갔다고 해도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삼십 원은 찾지 못한 채 일단락되었고 그 일은 내게 누명과 함께 어마어마한 교훈(?)을 남겼다. 바로 돈을 훔쳐 쓸 수 있다는 것.


 10원, 20원 학용품 값을 타 쓰는 것도 어려 때였다. 꼭 필요한 것을 산다고 해도 돈이 없다며 주지 않는 엄마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졸라대야만 어디선가 꺼내오거나 이웃집에서 꿔다 주곤 했다. 그렇게만 돈이 내 손에 들어오는 줄 알았다. 꼭 그렇게 해서만이 돈을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의 쌀독, 옷장, 뒤주, 석작, 항아리를 뒤지기 시작한 것은. 가끔은 모범생 작은오빠의 돼지저금통을 몰래 들고나가 집 뒷산에서 동전을 꺼낸 뒤 제자리에 놓곤 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벼 수매를 마친 어느 날은 푸르게 빛나는 500원짜리 지폐를 훔칠 수도 있었다. 그런 날은 거금을 다 쓰지 못해 남은 돈을 대문 밖 땅속에 묻어놓고 조금씩 꺼내 쓰곤 했다. 10원짜리 한, 두 개, 500원짜리 지폐 다발에서 한 장, 들키지 않을 정도만 훔쳤으므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엄마가 눈치채고도 모른척 하지 않았겠냐고? 엄마는 절대 그런 분이  아니다. 당장 잡아다  머리끄댕이는 물론, 호랭이가 물어갈 년 부터 시작해서 세상의 욕을 죄다 모아다가 내게 들이부을 분이다) 나름 기술적이었다고나 할까. 부모님, 오빠들에 대한 달콤한 복수였고 쏠쏠한 설렘이었으며 마음은 더없이 넉넉해졌고 매일매일이 윤택했다.    

  다행히 나는 소도둑이 되지 않고 착한 소시민으로 살고 있다. 삼십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온 가족이 모였을 때 그 얘기를 꺼냈다.

-누가 그랬느냐, 지금이라도 자수하라, 고.

-내가 그랬는데.

용의 선상에도 오르지 않았고 그래서 가져갔는지도 묻지 않았던 남동생이었다. 한바탕 웃음으로 오랜 시간 굳어진 누명을 벗고 아무도 알지 못했던 나의 좀도둑질도 이실직고했다. 엄마는 당장 갚으라고 엄포를 주었지만 부모님, 오빠들이 그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되레 큰소리쳤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끔 지갑의 돈이 빈다 싶을 때가 있었다. 화장대에 올려놓은 잔돈들이 사라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덜 모범생이고 게임을 좋아하는 큰애에게 의심의 날이 꽂혔다. 당장 불러다 앉혀놓고 낱낱이 사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 때마다 어두운 안방, 어린 나를 둘러싸고 온가족이 삼십 원을 캐묻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로부터 시작된 나의 좀도둑 생활도... 만약 가족들이 그 사실을 눈치채고 안 죽을 만큼 혼냈대도 나는 계속 엄마의 살림살이를 뒤졌을 것이다. 달콤하고, 쏠쏠하고 끝없이 풍요로웠던 그 맛을,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방과 후의 맛있는 시간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도 그랬을 것이므로.


 아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 지갑에서, 화장대 위에서 돈 가져간 적 있느냐고. 당연하지 엄마. 1초도 망설임 없는 답이었다. 어느 날엔가 엄마가 알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고. 조금씩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 미안함이 훔치고 싶은 유혹보다 더 커졌을 때 멈추게 되었다고.

 성장기에는 '자동' 버튼이 있다. 자동으로 작동하기도, 멈추기도 한다. 자동을 수동으로 바꾸려 할때 일이 커진다. 어떤 일들은 심증을 심증인 채 두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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