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상 Feb 20. 2023

주막에는 남편들이 있다.

  마을 초입에는 오래된 가게가 있었다. 스레트 지붕과 길바닥에는 멀구슬나무의 열매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앞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들어가면 샘표나 해표가 큼지막하게 붙은 왜간장, 식용유, 미원과 한미크래커, 뽀빠이, 쫀드기 같은 꽤나 유혹적인 과자들이 낡은 진열대 위아래 칸에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가게로 들어가는 창문 그 옆으로는 안집으로 통하는 대문이 있었다. 안집은 평범한 가정집 같았는데 가게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분리된 공간이었다. 앞에서 봐도 뒤에서 봐도 앞쪽 같은 그런 집이었다. 안집에서는 막걸리, 소주, 안주거리를 팔았는데 동네 사람들 뿐 아니라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술을 마시거나 화투판을 벌이곤 했다. 우리는 모두 그곳을 주막이라 불렀다. 


  아버지가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열이면 열 주막에 있었다. 어머니는 ‘느그 아부지 데꼬 온나’  특명과 함께 나와 동생을 주막으로 보냈다.

 주막은 마을과 오백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작은 야산을 지나 비포장된 신작로를 건너야 했다. 손전등도 없이 어둠 속을 익숙하게 걷는 우리는 흡사 들짐승이었다. 철커덩, 주막집 낡은 양철 대문을 밀고 들어가 마루를 앞에 두고 서 있으면 딱딱 화투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씩 누군가의 패가 잘 맞았는지, 혹은 잘 맞지 않았는지 감탄사나 큰 한숨 소리가 흘러나오곤 했다. 훈수나 혼잣말 같은 소리도 들렸는데 아버지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습관처럼 우리 남매는 아버지가 돈을 땄을지 펐을지 속삭이며 유추했다. 그 결과로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를 조절했다. 땄을 것 같은 날에는 큰 소리로, 펐을 것 같은 날에는 작고 조심스러운 소리로. 우리는 이미 한 패였다. 얼마라도 딴 날은 바로 나왔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한참을 더 서 있어야 했다. 어머니는 우리가 늦는다 싶으면 아끼고 아낀, 결코 쓰고 싶지 않은 패를 썼다. 그 시간까지 공부하고 있는 모범생 작은오빠였다. 그러니까 엄마에게는 작은오빠가 쓰리 고, 포 고까지 가서 이길 수 있는 쌍피 같은 존재였다. 그런 날은 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 주막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 간 날은 방으로 들어오게 해서 옆에 앉혀 두고 더 편안하게 화투에 빠졌다. 반질반질한 군용 담요에 착착 안기는 형형색색의 패들은 어머니가 늘 말하는 노름이 아니라 놀이였다. 비슷한 모양끼리 딱딱 맞아떨어지는 소리는 더없이 경쾌했다. 홍매, 연분홍 벚꽃의 불그죽죽한 것들의 향연이라니.. 밤이 깊어갔고 내가 왜 주막에 갔는지도 잊고 화투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타짜가 안 된 것은 참 묘한 일이다.    


 결혼하고 처음 맞은 남편 생일 하루 전, 남편의 월급날이었다. 퇴근해 저녁을 먹고 월급봉투를 내놓을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남편은 귀가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던 때여서 회사로 전화를 해 봐도 받지 않았다. 이미 식은 생일상을 치우고 한참을 대문 밖에서 서성였다. 나는 임신 5개월째였고 그러니까 남편은 더욱 상상 외의 일을 저질러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걱정이 화가 되었다. 화는 다시 걱정이 되었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은 걱정과 화뿐인 듯 오락가락했고 가볼 만한 주막도, 쌍피 같은 자식도 없었다. 누가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고 했던가. 걱정과 분노의 하얀 밤은 더더욱 없었다.       

  그날 밤 남편은 화투판에서 월급을 몽땅 날리고 새벽에서야 귀가했다. 그때부터였다. 아버지와 내가 한 패였던 그 날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은.    


매거진의 이전글 심증, 섣불리 파헤치면 안 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