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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2025년 슈퍼볼 켄드릭 라마 하프타임쇼

by 김채미



전설이 만들어졌다. 한국시간 2025년 2월 10일 월요일, 전철 안에서 미국에서 열린 슈퍼볼 하프타임켄드릭 라마의 공연을 본 순간 이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유튜브 댓글창은 난리였다. 켄드릭 라마가 드레이크를 디스한 곡을 슈퍼볼 무대라는 어마어마한 곳에서 노래한 것에 대한 비아냥도 있었지만, 진정한 힙합과 미국 정신을 보여준 무대였다는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이미 양분화된 의견을 만들고, 토론의 장을 만든 것만으로 이 무대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켄드릭 라마가 의도한 바였을 것이기에.


무대의 규모와 완벽한 흐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구성이었다. 곡의 적절한 배치와 미국 사회의 단변을 보여주는 듯한 스토리텔링은 켄드릭 라마 개인의 역사뿐 아니라 미국의 역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시작은 마치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 스위치를 연상하는 듯한 모양들이 반짝이면서 시작된다. 곧바로 작년 말에 나온 켄드릭 라마의 정규 6집의 제목이자 상징물 GNX가 등장하고, 그 위에 앉은 켄드릭은 랩을 시작한다. "12년 동안 펜을 쥐고 진실을 말하는 과정은 신들과 함께 들어 올릴 정도로 힘들었다고"말하는 켄드릭은 "평소에는 누구를 건드리지 않지만, 청소는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젠 이 혁명이 방송을 탈 것이고, 넌 적절한 시기를 골랐지만 사람은 잘못 골랐어."외치며 게임에 뛰어든다.


켄드릭 라마가 오프닝에서 보여주었던 랩은 무대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이자 그가 작년에 드레이크와 벌였던 디스전 내용, 미국 사회가 벌이는 악랄한 게임을 관통한다. 그는 첫 곡으로 'squabble up'(뛰어들어)를 선보인다. 그러자 미국 그 자체인 엉클샘으로 분장한 사무엘 잭슨이 무대에 등장해 "Too loud, too reckless, too ghetoo! Mr. Lamer. Do you know how to play?" "너무 시끄럽고, 무모하고, 조잡해! 라마 씨, 정말 어떻게 게임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나요?"라며 분노를 표출한다. 이에 응답하듯 켄드릭은 'HUMBLE'과 'DNA'를 선보이며 이것이 흑인에게 내재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타문화를 배척하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주의적인 말에서 겸손하라고(HUMBLE) 말하며, 이 움직임은 흑인 DNA에 내재된 자부심 넘치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들은 미국 성조기를 나타내는 댄서들의 옷과 더불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미국사회의 한 면임을, 그리고 그 미국 안에 흑인들도 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엉클 샘 사무엘 잭슨이 힐난하자, 켄드릭 라마는 그들이 좋아하는 팝 스타일의 곡을 SZA와 함께 선보인다.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이거죠! 그러니 더 이상 분위기를 망치지 마!"라고 손을 비비는 사무엘 잭슨에게 마지막 펀치를 날리듯 드레이크를 향한 디스곡 'Not Like Us'를 선보인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이 부분에 집중했을 것이다. 과연 디스곡을 하프타임쇼에서 선보일 것인가, 말 것인가. 심지어 드레이크가 공연을 한다면 켄드릭 라마에게 고소하겠다고 선포했던 만큼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켄드릭을 과감하게 무대를 선보인다. 참으로 재밌는 것이 드레이크를 디스 하기 위해 '걔네는 우리랑 달라.'(Not Like Us)라고 말했던 문장이 무대에서는 다른 의미로 들렸던 것이다. 계속해서 다른 문화에 대해 편견으로 가득 찬 시선을 던졌던 엉클 샘의 등장이 차별을 생성해 내는 의미로 변모시켰다.


이로 인해 켄드린 라마는 자아성찰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이 무대를 보는 당신 또한 '걔네는 우리랑 달라.'(Not Like Us)라며 선을 그을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내면의 모순과 성찰을 가감 없이 앨범에서 드러냈던 켄드릭 라마답게, 성찰을 유도하는 중의적인 문장으로 무대를 바꾸어버렸다. 이어지는 'tv off'를 통해 이런 사회 구조와 부조리에서 끊임없이 벗어나야 한다는 걸 켄드릭은 강조한다. 미디어에서 비치는 것과 달랐던 '드레이크의 모습', 편견이 만들어낸 '차별', 그것을 뒷짐 지고 바라만 보고 있는 '지도자'들, 이런 가십거리에만 신이 나서 달려드는 '미디어들'에서 벗어나야(turn off)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티비를 끄는 동작을 취하며 켄드릭 라마는 '게임'의 진정한 승자가 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로 기록된 켄드릭 라마의 슈퍼볼 하프타임쇼는 아폴로 13호가 달에 도착했던 날의 시청률과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로 초유의 관심을 받았던 무대는 켄드릭 라마의 완벽한 내러티브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는 단지 흠집을 내기 위한 랩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했던 이면을 드러내는 완벽한 힙합 정신의 랩을 구사했고, 개인의 역사, 국가의 역사, 세계의 이면을 무대로 풀어냈다. 단 13분 공연 안에 미국과 흑인의 역사가 모두 녹아있는 것이다. '40 에이커와 노새'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정부가 흑인 노예 해방 후 했던 약속을 어겼던 것처럼 그는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것으로 이제 그는 전설이 되었다. 하나의 무대가 한편의 소설이 되었기에. 아마 밥 딜런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을 가수가 나온다고 한다면 '켄드릭 라마'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음악뿐 아니라 사회, 역사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내는 켄드릭 라마에게 좋은 무대를 선사해주어서 감사하다고, 먼 나라에서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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