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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Nov 20. 2019

바르셀로나의 어두운 골목길에서

좌충우돌 바르셀로나 입성기 - 1/2

여행와서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다. 전에는 글쓰기가 일상적인 취미가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구구절절 글을 쓸만한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을 수 없는 편안한 여행만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하루에 한 번씩 무언가를 분출해내고 싶을 만큼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2일 전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돌아가 보자.


인천공항 영국항공 티켓팅 카운터 :

나 : 너무 급하게 일정을 변경하다 보니 제가 경유해서 비행하는 것은 처음인데 지금 부치는 짐을 런던에서 찾아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티켓팅을 할 때 부탁해야 하나요?

카운터 :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저희 제휴사인 다행히 아시아나 비행기에 직항 좌석에 앉을 분을 찾고 있는데 손님이 괜찮으시면 그리로 옮겨드릴게요. 직항이라 도착시간이 상당히 많이 빨라져요.

나 : 아! 너무 고맙습니다. 그렇게 변경되면 너무 좋겠네요.

카운터 : 그런데 아직 컨펌을 드릴수는 없고요. 일단 경유행 티켓을 받으시고 9시 30분경 저희 직원이 연락드리면 아시아나로 오시면 됩니다.

[잠시 후 라운지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걸려온 전화]

 전화 속 카운터 : 손님, 아쉽게도 그냥 런던으로 가셨다가 바르셀로나 가셔야겠어요. 죄송합니다.

나 : 할 수 없죠. 네. 알겠어요. (젠장 좋다 말았네)


바르셀로나 공항 :

비즈니스석도 아닌데 내 짐이 가장 빨리 발견되어 쾌재를 부르며 빨리 숙소로 갈 수 있겠다며 짐을 찾아 나와 택시 승차장으로 이동했다. 카니발 같은 큰 택시와 소나타 같은 작은 택시가 뒤섞여서 줄을 서있었는데 나에게는 큰 택시가 걸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무 커서 작은 것 타겠다고 했더니, 안내 직원이 내 마음을 읽고는 걱정 말라며 요금이 똑같다고 말해준다.


택시를 타고 예약한 아파트의 주소가 표시된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자 기사가 어딘지 알겠다며 쏜살같이 달린다. 일요일 저녁 7시 30분 정도라 길은 하나도 안 막힌다. 바르셀로나는 공항에서 도심까지 30분이 안 걸릴 정도로 편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20분 만에 도착한 숙소는 hotel.com의 지도와 double check를 하는 순간 이곳이 아니라고 나온다.


'Calle Santa Eulalia 91 L'Hospitalet de Llobregat, 08902'


그래서 지도를 기준으로 꾸불꾸불 골목길을 한참을 돌기 시작했는데, 운전기사가 어느 순간 미터기를 꺼버린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너무 찾는데 오래 걸려서 미터기 껐으니 걱정하지 말고 같이 찾자' 너무 아름다운 친절과 배려이다. 그런데 주소를 버리고 앱의 지도를 기준으로 20분을 더 헤매다가 내린 곳은 정말 엉뚱한 곳이었다. 예약센터로 전화를 해보니 아까 내리지 않았던 주소지 기준으로 가야 함을 알았다. 앱의 목적지 링크가 잘못 연결된 결과이다.

호텔(파란색)과 달리 다른 곳(붉은색)을 제시하는 앱 오류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바르셀로나의 어둡고 한적한 골목길에 큰 짐을 들고 서있는 불안감은 실로 대단했다. '오늘 중 숙소를 못 찾으면 어쩌나', '저기 멀리서 걸어오는 그림자가 나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지갑을 달라고 하면 어쩌나'하는 레벨까지 불안감이 급상승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잃었으니 택시를 불러줄 수 있나고 부탁해서 다시 택시를 탔는데 10분 정도 이동해서 내렸다. 91번지에 내려달라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 옆 건물인 93번지에 내렸다. 택시기사가 후진해서 가려고 해서 됐다고 그냥 내리겠다고 했다. 예약센터에 다시 전화를 하니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한다. 한국사람끼리도 초행길을 안내받을 때는  도통 뭔 소리인지 못 알아들을 때가 많은데 낯선 곳에서는 오죽하랴. 그래서 통화를 하면서 무슨 무슨 은행을 찾는데 헤매고 있으니 운전기사가 아직 안 가고 있다가 짠~하고 나타나서 전화기를 받아 들고 스페인어로 통화를 해서는 나를 91번지로 정확하게 안내를 하고 사라진다. 아~ 카탈루냐의 친절한 택시기사 두 명을 연속으로 만나다니...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곳은 스페인.


상업지역의 번듯한 호텔을 마다하고 주거지역의 허름한 아파트를 선택한 나의 똥고집을 후회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아파트는 별도의 체크인 시설이 없기 때문에 간첩 접선하듯이 사전에 메일링 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라던지, 현관 앞 화단의 옆에 숨겨진 열쇠를 찾아서 열어가라던지 하는 식이다. 이번에는 메일을 기다려도 그 어떤 단서도 받지 못했기에 현관 앞에서 또다시 전화를 해야 했다.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원격조정을 하듯이 문을 열어준다. 열고 들어오니 31호로 가라고 한다. 낑낑대며 좁은 계단에 캐리어를 들고 3층으로 올라가니 이번에는 또 기다려야 문을 열러 준다고 한다. 이 모든 커뮤니케이션 시간 동안 나의 국제통화료를 계속 올라가고 있고, 인내심은 바닥을 칠 무렵 아파트 문이 열린다.


아직 하고픈 말이 반은 더 남았다. 하지만 벌써 드는 생각이 이렇다. 표준화된 된 고만고만한 서비스의 호텔보다는 우여곡절이 있어도 사람 사는 것 같은 아파트가 좋다. (2편에서 계속)

이 글을 쓰고 있는 아파트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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