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go Dec 08. 2019

그래도 호텔보다는 아파트가 좋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개인 취향

'우우 우웅~'하고 모터사이클이 우렁찬 저음 엔진 소리를 내면서 좁은 골목길을 휙 지나간다. 이 이동수단은 지구촌 어딜 가나 성가신 노이즈를 만들어 낸다. 한국 가스배달 오토바이 같이 '빠라 바라 바~' 고음은 아니다. 이곳은 서울이 아니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이다. 


버스 한 대 지나가는 소리, 거리에 놓인 분리수거 쓰레기통에 주민이 캔이나 병을 하나씩 틱틱 집어넣는 소리가 가볍게 귓가를 흐른다. 맞은편 빵집 셔터 문 올리는 드르륵 소리 또한 아침을 열어는 일상의 소리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내 방문 발코니에 앉아 있다가 맞은편 집 지붕 밑 둥지로 날개를 퍼득거리며 날아간다.


반쯤 젖혀둔 침대 옆 발코니 창 밖으로 이렇게 낯선 도시의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눈을 뜬 곳은 2차선 좁은 도로에 인접한 도시 변두리 뒷골목 3층 아파트의 침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그리 소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이 맞이하는 일상적인 아침을 지척에서 보고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호텔같이 번듯한 간판을 못찾아 택시를 잘못 내리고 말았다. 그 때문에 어두운 밤거리에서 잰걸음으로 도망치듯 걸어야했고, 체크인 데스크도 없어서 스파이 접선하듯이 전화통화 후 리모트로 열린 방문을 간신히 통과해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일상과 단절된 8차선 도로 옆 초고층 호텔보다는 사람 냄새나는 시끌벅적한 아파트가 좋다. 


오래된 건물 좁은 계단으로 19킬로 캐리어를 낑낑 거리며 겨우 들어올렸다. 캐리어를 세로로 세워 어깨 높이로 들고 계단을 오르다가 살짝 근육경련이 오기도 했다. 호텔에서 벨보이에게 짐을 맡기고 우아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이 살짝 그리워지기도 했다. 다음날 오후에 계단을 지나다가 어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방문 앞에서 난감해하는 새로운 여행객을 만났다. 당황하는 새로운 방문자를 위해 나를 포함한 몇명이 함께 고민하며 도와주었다. 잠시 머물지만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웃이 있는 아파트가 좋다.


소설가 김영하 님은 호텔방에 가지런히 정돈된 순백색 시트가 좋다고 했다. 청결함은 나도 그다. 하지만 호텔에는 특이한 호텔 냄새가 난다. 단정한 앞치마를 입고 진공청소기와 살충제, 방향제로 청소를 마무리하는 하우스키퍼들이 남기고 간 석유화합물 같은 소독약 냄새 같은 것이 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과 벌레가 없을 같은 안도감을 주지만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호텔방 새가 왠지 싫다.


이곳에서는 5일간 청소를 하러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소소한 청소는 하면서 살아야 한다. 휴식의 참맛을 배가시키는 노동이라는 장치가 아파트에는 있는 샘이다. 이삼일쯤 되어 쌓인 속옷을 세탁기에 직접 돌릴 수 있는 점도 참 좋다. 호텔의 세탁 서비스는 보통 익일 배달을 요청하게 되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태가 발생한다. 가령 칠천 원짜리 러닝셔츠를 세탁하는데 구천 원이 들 수도 있다. 예전에 회사 출장비로 처리할 수 있을 때에도 너무 비싼 요금 때문에 욕조에서 손빨래를 자주 했다.  


보통 호텔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홈바 생수의 가격은 비현실적으로 비싸다. 공항에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호텔에 들어왔을 때 물 한 모금이 너무 마시고 싶지만 1달러면 살 수 있는 생수 한 병에 8달러라면 참 곤란해진다. 그럴 때는 일단 생수를 먼저 마시고 똑같은 제품을 사다 넣으러 애를 써야 다. 그런데 이곳의 냉장고 안에는 우유가 2팩, 빵이 4개, 맥주 4캔, 오렌지 주스 1팩이 선물처럼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불편함이 용서되는 순간이었다.


성냥갑 같은 원룸 스타일 호텔보다는 더 싸거나 비슷한 가격으로 침실, 거실, 화장실, 주방, 세탁실이 구분되어있는 점도 나를 기쁘게 한다. 여행지에서 꼭 들리게 되는 재래시장에서 생선이나 육류를 사다 구워 먹을 수도 있고 공수해온 티백으로 구수한 보리차를 만들 수도 있다. 바깥공기를 느끼며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도 좋다. 테이블에 앉아서 통유리문으로 살금살금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방음이 뛰어나지만 열리지 않는 호텔 창문보다 낡아도 활짝 열어 환기를 수 있는 창문을 가진 그런 아파트가 좋다.  


요즘은 여행지 한 달 살기가 붐이 라는데 공감이 간다. 자고 나서는 이불도 정리하고 바닥을 깨끗이 닦아낸 후 맨발로 실내를 걸어 다니고 음식도 다양하게 사다 나르고 간단한 요리도 하고 싶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그곳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내가 잠시 떠난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기 위해서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