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번째 사진은 꼭 표지로 써 줬으면 하네. 거기에 내 사진작가 인생의 정수(The Quintessence of life)를 담았어."
주인공이 어디론가 사라진 숀 오코넬의 25번 필름을 찾아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월터 미티(Walter Mitty)는 16년째 어두운 작업실에서 필름 현상을 담당하는 라이프 잡지의 필름 현상 책임자(Negative Asset Manager)이다.
그가 일하는 라이프(Life) 메거진은 포토 저널리즘 시대에 막강한 위세를 누리던 아날로그 시대의 아이콘 같은 잡지사이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그 찬란했던 영광을 뒤로하고 2007년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폐간되었다. 그동안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처어칠과 같은 수많은 정치가뿐만 아니라 메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슈퍼 스타들이 그 잡지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잡지의 마지막 호 커버에 실릴 '인생의 정수를 담은 사진'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월터는 작은 것들을 소중히 하며 사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는 자신을 저금통이라고 생각하는 백수 여동생과 도움이 필요한 연로한 어머니 때문에 빠듯한 수입을 관리하느라 가계부를 쓰며 알뜰하게 산다.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해서 연모하는 같은 회사 여직원에게 '윙크'를 보내려 하지만 send 버튼을 누르는데 떨리는 손가락. 그가 얼마나 소심한 성격인지가 잘 드러난다. 어디 한번 멀리 여행을 해 본 적도 없고 데이트 사이트에 자신을 멋지게 소개할 만한 모험을 한 적은 더더욱 없다. 데이트 사이트의 자기소개란에 여행과 모험 칸을 채우지 못해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원제는 월터 미티의 비밀스러운 삶(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이다. 그의 비밀스러운 삶은 바로 이러한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숨통을 틔워주는 발칙한 상상이다. 그는 슈퍼맨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 셰릴 멜 호프의 애완견을 구출하기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구조조정 책임자에게 보기 좋게 응수를 하기도 한다. 모두 상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는 회사에서 자신의 마지막 사명인 25번째 사진을 찾기 위해 그린란드로 떠나고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내리고 화산 폭발의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고 엄청난 모험을 감행한다. 데이트 사이트 자기소개란에 쓸 수 있는 온갖 다양한 여행과 모험 스토리가 하나씩 만들어진다. 소심한 샌님에 불과했던 그가 용감한 탐험가가 되어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미국 LA로 돌아온 월터는 여행금지 국가에 갔다는 명목으로 공항에 구금된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어떻게 갔지?"
"예멘을 통해서요."
"위험한 곳일 텐데?"
"그래서 겨우 항공료가 84달러죠."
공항 결찰과 주고받은 대화를 보면 이제 그는 더 이상 가계부를 쓰며 일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던 꼰대 아저씨가 아니다.
"전화 속에서 들었을 때에는 안경 쓴 꼰대 아저씨가 있을 줄 알았는데, 락밴드 리더를 하는 인디아나 존스를 만났네요!"
데이트 사이트 관리자인 토드는 그가 마치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과 같다고 했다. 성실한 월터는 소임을 다하기 위해 용기 있는 모험을 했고 더 이상 상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꿈과 같은 어드벤처의 주인공이 된다. 답답한 현실에서 꾸던 꿈과 상상이 곧 현실이 되어 버린 거다.
어릴 적 묻어버린 꿈을 되살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활강하는 그의 모습이 이 영화의 메시지라 생각한다. 모히칸 머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 대회를 휩쓸던 그의 모습이 더 이상 과거가 아닌 현실의 그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모험가이고 상상하던 것과 행동에 옮기는 것의 간극이 사라진 실천가로 변모하였다.
사실 월터의 이야기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월터가 가수 양준일이고 우리의 모습이다. 가수 슈가맨 양준일은 쫓겨가듯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힘들게 살면서도 삼십 년간 꿈을 버리지 않았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묻어버렸던 꿈을 향해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래하는 그의 손가락 끝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한 번도 꿈을 잃지 않았다고.
월터가 16년간 무덤덤하게 다녔던 회사가 그가 사랑하는 동료 셰릴 멜 호프에게는 꿈에 그리던 직장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루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일이 세상에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내는데 꼭 필요한 그 무엇이기도 하다.
내가 '월터'이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빛나는 보석을 위해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일이다. 내 일상을 조금만 벗어나려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현실은 언제나 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내 일은 소중한 것이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