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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Feb 13. 2021

외로운 떡국을 위하여

5그릇 이상 집합금지 당한 떡국

설날이지만 가슴이 설레지 않았다. 세상은 조용해야 했고 외출은 신중하게 해야만 했다. 아침과 점심 사이 애매한 시간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마스크를 쓴 채 세배를 하고 짧은 덕담을 나누는데 만족해야 했다.


아예 오지도 말라고 하시던 어머니는 막상 만나고 나니 떡국을 함께 먹지 못하는 데에 많은 아쉬움을 표현하셨다. 같이 식사를 안할거면 쌍화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 하셨지만 애써 냉정함을 유지했다. 딸과 내가 매일 회사에 출근해 많은 사람을 만나는지라 마스크를 내리고 입을 벌리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쉬움을 달래며 집에 가서 끓여 먹으라며 떡국과 꾸미를 싸주셨다. '꾸미'는 주로 경상도에서 떡국을 먹을 때 얻어먹는 소스와 고명을 합친 개념이다. 아내는 꾸미를 만드는 게 번거로워 떡국을 할 때마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식집에서 사 먹는 떡국은 고명도 없이 계란을 휙 풀어서 요리를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부터 먹던 경상도 표준 떡국은 약간 심심하게 끓여 낸 떡국에 계란 지단을 만들어 올리고 '꾸미'를 한 숟가락 듬쁙 퍼 올린 음식이었다.

떡국 꾸미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꾸미'에 대한 열띤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몇 해 전 아내의 친구 부부를 집으로 초대해 새해 인사를 나누며 대접했던 경상도식 떡국은 실로 다 같은 떡국을 먹는 줄로만 알았던 한국인이 지역에 따라 얼마나 천양지차의 다양한 떡국을 먹고 있는지 실감하는 자리였다.


그날따라 더욱 심혈을 기울여 만든 '꾸미'와 계란 지단을 듬뿍 올려 주었는데, 손님들은 당황해하는 눈치였으며, 일 년 후 아내에게 아내 친구가 한 이야기는 자기(충청도)와 남편(강원도)은 '꾸미'를 올려놓은 떡국을 처음 보았으며 쉽게 적응이 안되었다는 말이었다.


딸아이는 달리는 차 안에서 SNS에 설문을 던졌다. '꾸미'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불과 14%만이 '꾸미'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충격적인(경상도 출신에게만) 사실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집에 도착하여 떡국을 정성껏 끊여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무심코 보아 넘기던 '꾸미'와 떡국을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증명사진 찍듯이 휴대폰 셔터를 눌렀다.

  





부모님과 함께 한 식탁에 다섯 그릇이 나란히 놓여 있어야 할 떡국이 '떡국 5그릇 이상 집합 금지 명령' 때문에 외롭게 놓여 있었다. 내년에는 다섯 그릇을 함께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며 떡국을 먹는다. 외롭게 한 살을 더 먹는다.

외로운 2021년산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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