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산문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책에 실린 이야기다. 미국 공영 라디오 진행자 셀레스트 헤들리 경험담이다. 그녀의 직장동료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사무실 건물 밖에 홀로 앉아서 수평선을 응시하곤 했다. 헤들리는 그 친구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의 슬픔을 나도 이해해. 나의 아버지도 해군에 복무하였는데 내가 한 살도 안 되었을 때 임무 수행 중 배가 침몰해서 돌아가셨어. 나는 얼굴도 모르고 자랐어. 그래서 살아오는 내내 아버지가 그립고, 아버지 부재가 힘들었어.”
헤들리는 친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녀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위로해 준 것이다. 하지만 헤들리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 친구가 말했다.
“그래 좋아, 네가 이겼어. 넌 아버지를 알지 못했는데, 최소한 나는 아버지와 함께 30년 이상을 보냈어. 넌 내보다 훨씬 나쁜 상황을 견뎠어.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해”
헤들리는 당황해서 말했다.
“아냐,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냐, 단지 네가 어떤 기분인지 나도 잘 안다고 말한 거야”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아니. 넌 이해하지 못해. 넌 내 기분 조금도 몰라”
그렇게 말하며 친구는 떠났고, 헤들리는 자신이 그녀의 슬픈 감정을 조금도 위로해 주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헤들리의 경험담은 위로가 아니라 자기가 어려움을 극복해낸 자기중심적이며 교모한 자기자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을 위로한다’라는 뜻을 지닌 문장을 불현듯 만났다. 깊고 그윽한 울림을 준 그 문장을 아직도 마음 한가운데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며, 나의 SNS에 대문 창에 게재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아!’하고 신비함이 번뜩이는 그런 문장 말이다. 고 신영복 선생 작품 ‘함께 맞는 비’이다. 이 붓글씨 옆에 작은 글로 쓴 부서附書에 그 뜻이 새겨져 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위로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나의 처지에 딱 맞는 노래를 들었을 때 깊은 마음의 울림으로 눈물을 흘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사 한 소절이 마음의 허기를 채우듯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때론 친구나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한다. 오늘은 직장에서 선배의 지나친 모멸과 불공정 때문에 한바탕 싸웠다. 참고 또 참았던 울분이 터진 것이다. 옆자리 동료가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분하다. 앞으로 직장 생활이 위태로울 테다. 퇴근 후 한참이나 고단한 인생을 붙잡고 휘청거리는 회색 불빛 거리를 헤매었다. 지친 어깨 떨구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서야 꺼이꺼이 목놓아 엉엉 울었다.
위로는 말이야, 남들에게 건네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하는 거야. 우리는 타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위로하고 함께 나누는 방법을 잘 안다. 근데 그게 지속적으로 오래 못 가. 그래서 말인데, 나를 위로하는 법을 알아야 해. 슬프면 울고, 아프면 좀 쉬고, 기쁘면 애썼다고 나에게 토닥거리는 거야. 감정의 파동을 서핑하듯이 잘 타야 해. 이게 정말 필요해. 처음에는 당연히 잘 안되겠지. 근데 자꾸 하다 보면 신기하게 그게 된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까짓 것!’하고 멀리 던져버려. 던지고 또 던지다 보면 나만의 위로 방법을 찾을 거야.
위로는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야. 동태적이지. 긍정과 부정이 서로 끌어당기듯 몸과 마음은 자석의 양극단처럼 서로 밀치기도 하고 끌어당겨.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여진다. 그렇다고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는가? 쉽지 않다. 그래서 몸을 움직여야 해. 산책하고, 달리기하고, 수영하고, 막 돌아다니고, 평소에 익숙한 방식으로 몸을 움직여야 해. 억지라도 몸의 에너지를 태워야 해. 그러면 마음도 따라 움직거린다. 위로는 에너지 바꿈터이다. 옷을 갈아입고 물 한 모금 마시는 몸의 쉼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