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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은 Mar 22. 2020

이 참에 장례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집에서 쉬어야 할 사람은 당신이에요


 2월 초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 엄마의 엄마가 그리 짧지 않았던 고달픈 삶을 마감하셨다.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전염성 강한 폐렴이 유행하고 있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장례식 취소까지 고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비교적 확산 초기였고 신천지 신도들의 집단 감염이 있기 전이었다.


 할머니는 저녁에 돌아가셨다. 퇴근 시간 즈음이었다. 빈소가 차려진 건 늦은 밤이었다. 엄마를 포함한 할머니의 네 딸들과 사위들과 손주들은 텅 빈 빈소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보조 인력은 다음날부터 고용하기로 했다. 식탁에 여러 장씩 비닐을 깔고, 종이컵과 나무젓가락을 식탁마다 꽂고, 음식들을 세팅하는 등의 일은 모두 가족들이 했다. 할머니의 네 딸들은 너무 오래 매일 해온 일이라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듯 상복을 입고도 음식을 푸고, 나르고, 차리고, 모두에게 더 먹으라고 권했다. 모두 눈가가 벌게진 채 육개장과 수육과 홍어무침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는 아이 핑계를 대며 집에 갔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내 출산으로 이제 진짜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 함께 늙어가는 이모들은 당연히 너는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밤에라도 편히 쉬는 게 더 당연하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상주를 비롯한 자식들이 빈소를 비우는 건 말이 안 된다(고들 생각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모로 누워도 어깨가 배기지 않을 정도로 푹신한 내 침대에 누워 옆에 누운 남편에게 유언을 남겼다. 유언은 태어나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었다. 남편은 왜 자기한테 유언을 남기냐고 물었다. 그럼 누구한테 남길까.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나의 부모에게? 유언의 내용은 간단했다. 내 장례식은 열지 말 것.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만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남편에게 앞으로 여러 번 더 주지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찐)전통과 개량 상복


 정부는 시민들에게 앞으로 2주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하게 실천해주기를 요청했다. 일상의 평범함도 제한하는 분위기 속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의 기피는 불가피한 일이다. 특히 날짜를 미룰 수도 없는 장례를 치러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다른 종류의 장례를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당장 막막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이 장례 문화가 과연 이대로 괜찮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유족들의 육체적, 정신적 희생은 결코 망자를 위한 미덕이 아니다. 고인을 소중하게 추억하고 애도하며 떠나보내는 과정에 현재의 장례 의식이 과연 도움이 되고 있는가.


 전통의 소중함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문화가 과연 얼마나 전통에 가까운지 묻고 싶다. 장례식이 (찐)전통일 수 없음은 자명하다. 똑같이 생긴 여러 개의 화려한 근조 화환, 향과 십자가와 절과 기도의 공존, 남성들의 양장 상복과 여성들의 개량 한복을 닮은 상복. 이것들은 이미 너무 익숙해져 알아채기 어렵지만 다분히 편의에 따라 조정하고 덧붙인 것들이니 말이다. 수정된 전통이라면 언제든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법도, 제도도, 시민의식도 꾸준히 업데이트되는데 장례식이나 차례 같은 민간의 의례는 여전히 낡은 채다.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장례 문화


 평균 수명이 늘어갈수록 고인의 배우자와 자식들도 노쇠한다. 그들의 2박 3일은 젊은 사람들의 2박 3일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매번 고마움과 슬픔을 함께 내비치는 것도 정신적으로 매우 부담되는 과정이다. 할머니의 빈소를 지키던 엄마와 이모들의 그렇지 않아도 마른 얼굴들이 하루하루 수척해지며 더 닮아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슬픔과 그들을 지켜보는 안타까움이 교차되며 이 의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의식인지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작년에 아버지를 잃은 친구의 장례식에 갔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나와 동행한 지인들에게 아버지가 어떤 연유로 돌아가셨는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자신은 생각보다 괜찮다며 담담히 미소 짓기도 했다. 그리고는 우리의 근황을 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가 이렇게 담담해지기까지 같은 말을 얼마나 반복했을지, 또 그 말을 앞으로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하는지가 더 걱정되었다. 그가 감정이 풍부한 사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담담함이 오히려 슬펐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조문객이 아닌 자신을 돌봐야 한다.


 가까이서 지켜본 장례 의식은 유족들에게 자신을,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돌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고인이 돌아가시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제단과 음식에 얼마나 비용을 들일 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상실의 소식을 누구에게 알릴지, 또 누구에게는 알리지 말지 결정해야 하고 연락해야 한다. 혹시라도 연락하지 않아 서운할 사람이 있을지, 연락을 받고 부담스러울 사람이 있을지도 섬세하게 가늠해야 한다. 조문객이 조문을 시작하면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울음을 참고, 조문객 앞에 앉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중간중간 음식을 얼마나 더 주문할지 고민해야 하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영수증에 서명을 한다. 지나치게 제도화되어 있는 이 절차들은 가장 상처 입은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현재의 장례 문화는 비혼 인구나 노키즈 가구에 철저히 불리한 형태이기도 하다. 자손 중 하나를 상주로 삼아야 하는 자손 중심의 장례 문화는 비혼으로 살아온 사람의 장례식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나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든, 얼마나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살았든, 얼마나 충만하게 살았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비혼을 고수하는 사람이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커플에게 누군가는 노년과 사후의 쓸쓸함을 이유로 들며 생각을 바꾸라고 한다. 이런 충고가 여전히 빈번한 것도 자손 중심의 장례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모여 애도할 기회는 어쩌면 한 번뿐인데


 최근 어쩔 수 없이 장례를 축소하여 치러야 했던 분들이 겪었을 마음의 고통을 내가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장점을 발견한 분도 있지 않을까. 꼭 참석해야 할 사람들만 조촐히 모여 고인을 추억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어설프게 아는 사람에게 어색한 위로를 받는 대신 서로 껴안고 마음 놓아 울 수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 남은 짧지 않은 애도 기간을 건강히 지내기 위해 필요한 체력을 낭비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내가 할머니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맞벌이하는 나의 부모를 위해 내 어린 시절을 자주 함께 보내주셨던 분인데, 여전히 그의 살결과 냄새가 또렷이 기억나는데 그의 삶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빈약했다. 엄마와 이모들에게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만 아는 할머니와의 일화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들도 분명 궁금해할 테니까. 사랑하면 끝없이 궁금해지니까.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고, 거쳐야 할 절차가 너무 많았고, 모두들 피로해했다. 모두가 이렇게 모일 기회가 또 많지 않을 텐데, 함께 애도할 기회는 이번뿐이었을 텐데.


다시 한번 유언한다. 장례 문화가 여전히 지금과 같다면 내 장례식은 없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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