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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Aug 28. 2019

육아생활자 수기2. 어른들의 말 배우기 연습

D+187


훈기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서 더 자주 울고 있다. 뒤집어서 엎드려 있다가 답답하다고 울고, 혼자 앉아 있다가 뒤로 넘어져 울고, 고정되어 있는 장난감을 뽑아놓고는 울고, 이유식을 먹기 싫다고 운다. 벌려놓는 상황은 다양해졌지만 수습이 되지 않는 것이 당황스러운가 보다. 보통 이런 울음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대부분 아이에게 큰 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고, 울다가 새로운 관심거리가 생기면 금방 그치기 때문이다. 훈기는 울음 끝이 짧은 편에 속하는 아이다.


훈기의 잦은 울음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나는 훈기가 울고 있을 때 주변 어른들의 행동을 관찰하게 되었다. 우는 훈기를 달래는 어른들에게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울고 있는 훈기에게 “누가 그랬어?”라며 편들듯 묻는 것이다. 훈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운다. 그러면 그 울음에서 어떤 대답을 듣기라도 한 듯 “ㅇㅇ가 그랬어?”라고 묻는다. 여기서 ㅇㅇ는 그때그때 다르다. 훈기 성에 차지 않는 장난감일 때도 있고, 머리를 부딪힌 이불 깔린 바닥일 때도 있고, 이유식을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 한 엄마일 때도 있다. 훈기의 계속되는 울음은 어른들에게 정의로운 심판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한다. “내가 ㅇㅇ를 때찌때찌 해줄게.” 더 흥미로운 것은 진짜 때찌때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훈기를 힘들게 한 죄목으로 잡혀온 장난감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을 뿐인 바닥을 찰싹 치거나, 옆에 있는 양육자를 치는 시늉을 한다. 보통 여기까지 오면 훈기는 울음을 멈춘다. 어른들의 편들어주기가 훈기의 마음을 달래주었을까? 훈기는 이제 고작 6개월짜리 아기이다. 어른들의 응징과는 상관없이 울음을 멈출 때가 되어 멈추는 것이다.


나는 어른들의 이러한 반응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말하기 민망해서 보통은 그냥 넘어가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아이가 우는 상황은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 자신이 신체적, 감정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에 겪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설령 누군가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응징이나 복수가 사건의 해결책일 수는 없다. 아이에게 불쾌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일의 (존재하지도 않는) 주범을 찾아 혼내주는 일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이는 자신의 불쾌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험을 차단하는 것이다. 또 자신의 미숙함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막는 것이다. 만약 아이의 잘못이 개입되어 있다면 스스로 반성하는 능력을 키울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많은 어른들은 ‘누가 그랬어?’라는 말을 여러 맥락에서 듣고 자랐을 것이다. 이번 경우와 마찬가지로 편을 들어주는 말이었을 때도 있고, 자신의 탓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추궁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 ‘누가 그랬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대상을 고자질하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내 잘못 때문에 혼이 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발화에 나쁜 의도가 섞여있지는 않을 것이다. 익숙한 표현일수록 성찰 없이 내뱉게 된다.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다. 반사적 속도로 튀어나오는 말을 삼키는 연습을. 그리고 내 말이 과연 아이에게 괜찮은 말인지 살피는 연습을. 더 적합한 말들의 목록을 만드는 연습을. 그 목록을 실천해 보는 연습을. 고되더라도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서서히 바뀌겠지. 그리고 연습을 거듭한 말을 듣고 자란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하는 말들도 바뀌어 있겠지.


https://www.instagram.com/babyhoo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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