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생활자 수기 #7.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육아가 힘들지 않느냐고.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경우는 오히려 적다. 육아 유경험자들은 그 어려움을 알기에 나에게 공감해주기 위해 묻는다. 무경험자들은 자신의 리스펙트를 나타내기 위해 묻는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질문하는 의도는 제각각 달라지지만, 질문자들의 전제는 동일한 것 같다. ‘육아는 힘들다’.
육아는 힘들다는 전제 하에 던지는 질문에 나는 그들이 예상한 답과는 조금은 다른 답을 내놓곤 한다. 내 컨디션에 따라서, 혹은 아이가 커가며 겪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그때그때 대답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할 만하다’는 것이 내 평균의 대답이었다. 힘들긴 하지만 할 만해요, 라는 대답을 들으면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이거나, 나를 꽤 대단한 사람 보듯 바라본다.
물론 괄호 안에 숨겨둔 수식어가 있기는 하다. (예상보다) 할 만하다,라고 말해야 더 정확한 대답이 된다. 가끔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는 질문자에게는 괄호를 풀어 나의 이 당돌한 대답을 해명하기도 한다. 해명은 어느 에피소드 하나로 시작된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회식 자리에 육아휴직 중인 직장 선배가 초대된 적이 있었다. 선배는 퇴근한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한 시간 정도 늦게 식당에 도착했다. 회식에 참석한 대부분이 기혼이었고 이미 아이가 있는 분들도 많았기 때문에 화제는 자연스럽게 육아 이야기로 흘렀다. 당시 나는 결혼 계획도 딱히 없는 20대 중후반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육아는 관심 밖의 일이었고,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 대한 반가움과는 별개로 그의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룰도 모르는 스포츠 종목의 경기 요약을 듣는 것과 같았달까. 중간중간 딴짓을 해가며, 미혼인 또 다른 동료와 짧은 잡담을 해가며 선배의 육아 이야기를 흘려가며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배의 한 마디가 내 모든 감각을 붙잡아 맸다. 그는 말했다. “빨리 복직하고 싶어요.”
당시 나는 돈 버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주 생생하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매일 녹초가 되어 집으로 들어왔고, 풀리지 않는 고민들을 붙잡고 오래도록 샤워를 해댔다. 생전 처음 노력 없이 체중이 몇 킬로그램이나 빠지는 경험을 했고, 전에 없던 병이 생겨 응급실을 들락거리다가 결국 간단한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사회 초년생의 신고식은 해를 거듭해 이어졌다.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복직이 낫겠다니. 하루 종일 육아를 하느니 차라리 일을 하겠다니. 육아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가. 그녀의 표정과 몸짓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그 한 마디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그 한 마디는 육아의 고됨을 가리키는 나만의 저울의 바늘이 되었다. 육아라는 것은 직업으로서의 일보다 훨씬 힘겨운 것, 지금껏 내가 경험한 모든 상황보다 더 험난한 것.
그래서 임신을 하기도 전에 아주 큰 각오부터 다졌다.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고통과 난처함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이가 주는 기쁨이 사금이라면 고통은 모래알일 거야. 아프고, 지치고, 우울하고, 외롭고, 화가 나고, 슬프고, 다 그만둬 버리고 싶을 거야. 그래도 해낸다, 받아들인다, 피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잘할 수 있다, 아니 잘하지는 못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아자아자 화이팅. 지금 생각해보면 이 각오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에베레스트산을 예상했는데 겪어보니 한라산이네, 하는 그 마음이. 일단 마음의 웨이트는 충분히 해 둔 셈이었다. 허리와 손목의 근육을 함께 단련해 두었더라면 더 효과가 좋았겠지만.
물론 한라산은 매일 눈에 띄게 자라고 있다. 이렇게 자라다 보면 결국 에베레스트가 되고야 말 것 같다. 나의 저 각오들이 무력해지는 순간이 머지않았다는 예감이 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육아 무경험자들에게는 육아의 어려움을 꼼꼼히 예시를 들어가며 말해주는 편이 좋겠다. 그들이 혹시라도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내 말을 듣고 상상한 험악한 육아 암벽이 역설적으로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참, 그 선배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복직했다. 뱃속에는 둘째를 임신한 채였다. 엄마이자 직장인이자 임산부가 된 선배에게 복직이 어떤 무게였을지 지금의 나로서는 또다시 아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