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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은 Sep 11. 2019

너는 계속 자, 유모차에서

육아생활자 수기 #6.



훈기의 ‘엄마 사랑’은 매번 같은 표현으로 드러난다. 내 몸 어딘가를 붙잡고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발을 구르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의 요구는 ‘1) 안아줘 2) 안았으면 일으나 3)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돌아다녀 줘’로 이어진다. 아직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그 욕구가 아주 강하고 구체적이다.


훈기의 엄마 사랑이 최고조에 달하는 오후가 되면 나는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훈기가 원하는 대로 안아 들고 돌아다니다가 이것저것 다른 놀잇감들로 유혹해보기도 하고, 다시 안고 돌아다니다가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 되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오후다. 오늘은 미세미세도 파란 얼굴로 웃고 있다. 유모차를 밀고 특별한 목적지 없이 동네를 돌며 마트에서 채소와 간식 몇 가지를 샀다. 다행히도 훈기는 유모차를 즐기는 아이다. 유모차에 앉아 사람과 풍경과 자동차를 구경하느라 바쁜 아이 덕에 산책을 하는 동안 나는 하루 중 가장 평온하고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한 시간 정도의 외출이 끝나갈 무렵, 꼿꼿하던 훈기의 목이 앞으로 숙여지기 시작한다. 유모차 등받이를 최대한 눕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가 잠들기 편한 자세를 만들어 주고, 차양을 깊게 덮어 준다. 훈기가 깨지 않도록 바닥의 요철을 피해 가며 안정감 있는 주행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현관의 턱을 넘는 고비도, 문이 닫힐 때 도어락이 내는 삐리릭 소리의 고비도 다행히 잘 넘겼다. 아이를 안아 방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그게 망설여진다. 그리고는 아쉬워한다.


‘집에 도착한 후에 잠들었어야 하는 건데.’


잠든 아이를 유모차나 카시트에서 내릴 때는 정말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대부분 잠에서 깨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선잠에서 깨 피곤한 아이의 울음과 투정으로 다시 육아 노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 긴장되는 순간일 수밖에. 평소 예민하지도 않고, 잘 우는 편도 아닌 훈기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깨는 것은 견디기 힘든지 오랫동안 거칠게 운다. 그때의 울음은 무엇으로도 잘 달래지지 않는다. 안아줘도, 간식을 줘도 소용이 없다. 전실에 놓인 유모차 안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훈기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나는 그 울음소리를 상상한다. 그리고 마음을 먹는다.


'너는 계속 자, 유모차에서.'


밖에서는 유모차에서 자주 자곤 하는데 뭐.

나는 아이를 깨울 가능성이 큰 이 난관을 피해 가기로 했다. 밖에 나가면 유모차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는데 뭐, 등받이에 쿨매트도 깔아 두었고 전실은 시원한 편인데 뭐 어때,라고 그래도 되는 이유들도 찾아냈다. 나는 훈기를 유모차에 그대로 둔 채 혼자 집 안으로 들어왔다. 중문은 물론 열어두었다.


들어오자마자 쇼핑한 채소를 냉장고에 넣고 노트북을 열어 검색어를 넣는다. 안 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마음이 편치가 않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누군가에게 확인이라도 받고 싶다. ‘유모차 잠든 아이 현관’이라고 검색하니 나와 같은 상황에서 같은 질문을 품은 아이 엄마들의 문답이 여럿 나온다.


‘그냥 그렇게 재워요’, ‘깨면 난감하잖아요’, ‘저도 많이 그랬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래도 괜찮다’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절실해지는 때가 잦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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