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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은 Sep 08. 2019

내가 낳은 것은 아마도 모순인가 보다

육아생활자 수기 #5.


출처: <태도의 말들>. 엄지혜.



“간단하게 말해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같아요.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알지 못했던 감정의 선까지 보게 되죠.”


소설가 이기호의 말이라고 한다. 친구가 이 문장을 보내며 나에게 정말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예비 엄마의 질문이라 신중해야 해서, 무릎에 매달려 있는 훈기를 케어해야 해서,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 해당되는 예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떠올리다 보니 감정이 자꾸만 널뛰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을 내 인생에 들이는 것이 두려웠던 때가 있었다. 동시에 누군가가 나를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면, 슬퍼질 것 같았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아야(도) 되겠다고 생각했었고, 아이를 갖지 않아도(야)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다소 이기적으로, 가볍게 살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낳았다. 나에게는 소설가 이기호의 저 문장이 그렇게 되고 보니 어때, 라는 질문처럼 들린다. 그래. 지금 나는 어떤가. 나는 전보다 더 자주 슬프다. 더 자주 불안하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더 행복하다. 이 모순이 매일, 매 순간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


훈기가 낮잠을 자는 틈틈이 읽어 온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오늘 끝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에게 시달리다 못해 그를 살해한 피해자와, 복역하고 나온 그 살해범의 주위를 옥죄듯 맴도는 죽은 아이의 반쯤 미쳐버린 엄마 이야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 허공에 대고 숨을 골라야만 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마주치는 교복 입은 청소년들은 모두 나의 과거들이었다. 출산 전에는 그랬다. 나는 그들을 보며 내 10대 시절을 떠올렸다. 아이를 낳고 난 지금은 그들의 모습에서 내 아이의 미래를 보려고 한다. 장강명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야기 속 학교폭력 가해자가 내뱉는 무심히도 폭력적인 언어들이 어떤 음성에 담겨 있을지 상상할 때, 결국 살해범이 되고야 만 피해자가 긴 복역을 마치고 나와 어떤 외양을 하고 살아갈지를 상상할 때,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그 목소리와 모습에 내 아이의 허구의 미래를 겹쳐보곤 한다. 그리고는 격하게 감정이입하며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이다.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반대로 가해자가 된다고 가정하는 것조차도 되도록 피하고 싶다. 치가 떨리도록 무섭고 불안하다.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미래일 것이라고, 근거 없는 확답이라도 누가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날만 있는 건 아니다. 놀이터에서 처음으로 훈기에게 그네를 태웠던 날 밤 훈기를 재우고 나서 떠올린 또 다른 허구의 미래는 아주 밝았다.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 훈기가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깔깔대고, 축구를 하고 농구를 하고, 게임 전술이나 캐릭터에 대한 수다를 한참 떨다가, 허기진 배를 감싸 안고 근처 분식집으로 뛰어가 떡볶이와 튀김과 순대와 쿨피스를 시켜 친구들과 나누어 먹고서는 얼굴이 꼬질꼬질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떠올렸던 밤, 나는 이불을 꼭 껴안고 행복에 겨워하다 잠이 들었다. 아이의 이런 특별할 것 없는 하루치의 미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주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겪어본 가장 괜찮은 경험 몇 장면만큼이나 아주 강력하게 말이다.


“감정선이 깊어지다 보니 타인의 삶과 감정에 공감하는 폭이 넓어지고요”라고 이기호는 말을 잇는다. 이 말에도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이야기 같은 남의 이야기들이 늘어난다. 타인의 이야기들이 전보다 더욱 섬세하게 다가온다.


남편 사촌의 딸이 있다. 유독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려 친척 어른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어했던 아이다. 아이의 예민함에 부모의 걱정이 작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설에 그 아이가 친척 어른들 앞에 섰다. 티비 앞 무대에 서서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했다. 두 곡씩이나 말이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나는 열렬히 앵콜을 외쳤는데, 너무 좋은 나머지 박수를 치며 눈물을 조금 흘리고 말았다.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눈물까지 흘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정말이지, 가볍게 살고 싶었었는데 말이다.



201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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