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프자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육아생활자 수기 #8.

by 참깨

아이에 대한 내 입장은 유보적이었다


아이를 가졌을 때, 아무도 나에게 ‘왜’냐고 묻지 않았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부부에게 ‘왜’라는 질문은 무신경하리만큼 자주 쏟아지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부부가 ‘왜’라는 질문을 받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아무도 묻지는 않았지만 나는 자주 궁금했다. 왜 그때 내가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는지, 무엇이 나를 그렇게 확고하게 만들었는지. 임신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찾아왔던 그 날을 선명히 기억한다. 여러 번 반복해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날은 매일 한 번 이상씩 울음을 터뜨리거나 참아야 했던 날들 중 하루였다.


결혼을 하던 무렵 아이에 대한 내 입장은 유보적이었다. 결혼 결심을 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임신 결심이 뒤따라오지는 않았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확신까지는 아니었다.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었다. 반면 남편은 결혼 전부터 꼭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본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내가 물으면 언제나 둘 이상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망설임 없이 말하곤 했다.


왜 아이를 갖고 싶냐고 물으면 남편은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인간으로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고, 그게 없다면 무언가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 않겠냐고. 남편이 내놓은 이유에 완벽히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 없이 사는 삶이 어떤 종류의 고상한 감정이 결핍된 상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자녀를 ‘노후 대비책’로 여기는 듯한 발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우리의 짧은 연애 기간을 핑계로 들어 당장은 임신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그는 생각보다 쉽게 동의해 주었다.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아직 단단한 결심이 자리하지 못한 내 마음을 정리해 볼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신혼 기간을 보냈다. 퇴근 후에는 작은 모니터로 영화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고, 함께 운동을 했고, 짬을 내 여행을 다녔다. 늘어지고 싶을 때는 한 없이 늘어졌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는 시간을 바짝 그러모아 썼다. 임신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지는 않았다. 가족계획이 있냐는 타인의 질문을 받을 때 한 번씩 떠올렸던 것 같다.


엄마가 아프자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그렇게 10개월 정도 신혼을 즐기고 있을 무렵, 갑자기 엄마가 아팠다. 엄마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낌새를 알아챈 날부터 엄마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져갔다. 급하게 검사를 실시했고, 검사 결과를 설명하며 담당 교수는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로 다음날 수술에 들어가자는 의사의 말에는 다른 여지가 없어 보였고, 우리에게는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해 볼 여유가 없었다.


다른 환자들의 수술 스케줄을 미뤄 수술방을 잡아야 할 정도로 엄마의 상태는 초를 다투는 것이었다. 큰 수술이었다. 수술이 끝났지만 엄마는 쉽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지만, 하루 두 번 밖에 면회가 되지 않는 중환자실 침상에서 5일 정도를 보내야 했다.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서도 엄마가 제대로 회복할 수 있다고 장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임신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건 그 와중이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머물 때였고,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때였다. 30분 간 가능한 면회를 위해 먼 길을 달려가 엄마 얼굴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안방은 암흑이었다. 그냥 침대에 드러누워버리고 싶은 처진 마음과 몸을 겨우 일으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켰다. 안방 화장실에 불이 들어왔다.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불빛에 의지해 침대에 던져두었던 실내복을 주섬주섬 입으려는데, 느닷없이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 생전 처음 느끼는 임신에 대한 강한 열망이었다. 곧바로 평소 사용하던 생리 주기 어플을 열어 가임 기간을 확인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말했다.


왜 나는 그때 아이를 갖겠다는 결심을 했을까


아픈 엄마와 임신 결심 사이에 어떻게 인과 관계가 형성되었는지 그때도 지금도 알지 못한다. 육신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 엄마의 몸을 통해 목격하고 있을 때였다. 엄마와 가족들 앞에서는 희망에 대해 말했지만,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뒤숭숭하던 때에 그렇게 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엄마가 아픈데 아이를 갖겠다니, 불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심은 확고했다. 결국 두 번의 시도 끝에 임신이 되었다.


엄마에게 임신 소식을 전하던 날이 기억난다. 아직 엄마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이었다. 수술 때문에 짧게 깎은 머리가 아직 까칠하던 때였다. 예상대로 엄마는 거의 울 것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그 말을 전하던 나는 이상하게 엄마에게 미안했다.


왜 나는 그때 아이를 갖겠다는 결심을 했을까. 어쩌면 엄마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상실을 상쇄하기 위해 또 다른 소중한 존재를 생성하려는 기제 같은 것이 내 본능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엄마에게 고분고분했던 적이 별로 없던 터라 혹시라도 후회하기 전에 만회해야겠다는 조급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엄마를 상처 받게 했던 모진 내 말과 표정들이 매 걸음 위에 하나씩 얹을 수 있을 만큼 수시로 떠올랐던 때였으니까.


결혼 이후부터 줄곧 손주를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던 엄마는 지금 훈기 바라기가 되어 있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제 거의 건강을 되찾았다.


아기집을 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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