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생활자 수기 #9.
<툴리>의 출산 및 산후조리 과정은 건조하다. 설령 신생아로 인해 흐뭇하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해도 카메라는 산모의 피폐한 몸과 마음의 증세를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그리고 눈물 나는 몽타주가 이어진다. 끝없는 불면, 기저귀 쓰레기의 사슬, 젖이 돌아 아픈 가슴에 매달린 유축기, 어질러진 레고 블록을 밟고 지르는 비명. 엄마 되기의 공포를 그린 <바바둑>(2014)을 잇는 올해의 호러라는 말이 농담만은 아니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씨네21>
작년 11월에 개봉한 <툴리>를 얼마 전에서야 보았다. ‘출산을 소재로 한 호러 영화’라는 농담이 나에게도 농담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관객이 공포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심신의 고통을 유사체험 하듯이 <툴리>의 주인공 마를로(샤를리즈 테론)가 겪는 고통이 전부 내 것 같았다. 아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내 것이었다.
육아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다른 영화들보다 유독 <툴리>가 공포스럽게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 산모의 몸이 겪는 아픈 변화들과 매일 반복되는 육아의 현실을 과장도, 은폐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육아를 겪어 본 사람들은 장면 하나하나가 전부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마를로가 가슴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장면에서는 플라스틱 바가지처럼 딱딱하게 굳은 양쪽 가슴이 불에 덴 것처럼 아팠던 그때가 스치고, 그녀의 어기적거리는 걸음에는 내 한쪽 골반 구석에 자리 잡아 영영 낫지 않을 것 같은 뾰족한 통증이 겹쳐진다. 하룻밤 새에도 몇 번씩 깨는 아기를 위해 램프를 밝히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아기를 재우다 힘이 풀린 손가락 사이로 떨어진 스마트폰이 아기의 얼굴에 떨어지고, 잘 들지도 않는 손톱 가위를 들고 종잇장 같은 손톱을 자르느라 진땀 흘리고, 기저귀가 줄줄이 사탕처럼 나오고, 우주복에 달린 10개도 넘는 단추를 풀고 또 채우고, 젖을 먹이고, 유축을 하고, 또 하필 애써 유축해 둔 그 모유가 잠시 방심한 틈에 쏟아져 버린다.
세 아이의 엄마인 마를로의 육아는 단순히 비교하더라도 아이가 하나인 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고되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극한의 조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 마를로에게 딱 하나 부러운 것이 있었다. 영화 내내 젖병은 등장하지 않는 걸 보니, 마를로는 완모 중인 엄마로 짐작된다. 분유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모유 수유만으로 아이의 식사를 해결하는 완모 엄마 말이다.
젖이 넘치는 사람은 넘치는 대로, 모자라는 사람은 모자라는 대로 각각 고충이 있다. 모유의 양이 아기가 먹는 양에 비해 많으면 가슴에 남은 젖 때문에 항상 가슴이 아프다. 반면 모유가 모자라는 엄마는 그 양을 늘리기 위해 몸과 마음이 모두 고생이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매번 가슴이 땡땡하게 불었지만 정작 젖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훈기는 아주 많이 먹는 아이였고, 또 입은 작은 아이였다.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해 젖을 핥기만 하고 잘 물지 못했다. 한 손으로는 아이의 얼굴을, 한 손으로는 가슴을 잡고 둘을 도킹하느라 진땀을 빼고 나면 뒷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훈기도 젖을 무는 데에 힘을 다 써서 그런지 젖을 빨다가 금세 울어버리곤 했다. 그러면 나는 분유를 타서 배고파하는 훈기에게 먹였다. 훈기는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주냐는 듯 젖병을 싹 비우곤 했다. 훈기에게 분유를 다 먹이고 나서도 수유는 끝이 아니었다. 유축을 해야 한다. 젖을 늘리기 위해 남은 젖을 전부 짜내는 것이다. 젖은 아이가 필요로 하는 만큼 늘어난다고 한다. 유축이라도 해서 호르몬 일지, 뇌 일지 모를 나의 몸을 속여야만 한다.
하루에 여섯 번에서 일곱 번 정도, 서너 시간 간격으로 돌아오는 수유 텀은 그렇게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모유 수유-분유 수유-유축, 매번 이 세 단계를 반복해야 하는 시간들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설거지 타임. 내가 먹은 그릇 치우는 것도 버거운데 아이의 젖병과 유축기 깔때기를 하나하나 분해해 닦아야 했다. 깨끗이 닦지 않으면 큰일이 날까 두려워 별로 있지도 않은 세심함을 쥐어짜 내곤 했다. 어차피 소독기에 넣어 한 번 더 소독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 사이 훈기는 먹는 양을 착실히 늘려 가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생후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이미 하루에 1000ml의 분유를 먹는 아기가 되었다. 훈기는 갈수록 점점 더 모유를 거부했고, 어쩔 수 없이 유축에 의존하게 되었다. 유축하여 모은 모유를 젖병에 담아 먹이거나, 한 끼 양이 채 되지 않는 모유는 분유와 섞어 먹였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모유가 늘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나를 낳고 두 달 동안 빈 젖만 물렸다는 나의 엄마가 결국 나를 완모로 키워냈다는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자주 떠올렸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출산 후 딱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생리를 시작한 것이다. 오로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생리라니. 부정출혈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아니었다. 생리통까지 있는, 명백한 그것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생리가 없다는데. 몇 달 동안, 어떤 사람은 일 년이 넘게 없기도 하다던데. 생리를 일찍 시작한 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한 달에 일주일씩 더 고생을 하겠지만, 몸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생리를 시작한 날부터 매일 확연하게 줄어가는 모유의 양이었다. 몸이 회복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 몸이 나에게 아직 젖먹이 아기가 있다는 사실까지 잊는다면 곤란했다. 훈기에게 젖을 물리고 남은 젖을 짜내면 많을 때는 한 번에 100ml까지도 나오던 젖이 생리를 시작하고 나서 하루가 다르게 줄어갔다. 가슴의 상하좌우를 꾹꾹 눌러가며 짜내도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 만에 최대양이 80ml가 됐고, 그다음 주에는 50ml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완전히 끝이 나버렸다. 젖몸살도 없었다. 젖을 말리는 마사지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아주 깔끔하게 끝이 나버렸다.
훈기에게 모유를 먹인 기간은 그러므로 총 두 달이다. 그 두 달 동안에도 모유는 간식에 불과했다. 분유 수유량이 모유량을 압도했다. 내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분유 보충 없이 모유 수유만을 고집했더라면 어땠을까. 엄마처럼 처음 두 달을 분유 없이 견뎌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이른 생리도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지금도 들기는 한다. 자책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더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완분으로 전환하면서부터 -툴리가 등장하면서 마를로에게 생긴 변화처럼- 나에게 다시 생기가 돌아온 것도 사실이다. 모유보다 포만감이 오래가는 분유는 아기가 덜 보채고, 더 오래 자게 해 준다. 수유를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도 있다. 그동안 나는 혼자서 외출을 하기도 했다. 음식을 가려 먹지 않아도 되고, 맥주를 마실 수도 있었다. 모유 수유를 할 때는 아기에게 모든 것을 맞췄었다면 젖이 마르고 나서는 내 패턴을 하나하나 회복해 나갔다. 물론 편하자고 모유를 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꾸만 훈기에게 미안해졌다.
그럴 때면 나는 타인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젖 양이 부족했던 것이 내 탓일 리가 없다. 금이 가있는 유리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그때에 스스로를 더 밀어붙였다면 그 '노오력'이 내 멘탈을 깨부숴버렸을지도 모른다.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 속 내 몰골은 엄마라기보다는 환자에 가까웠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호르몬의 작용으로 생리를 일찍 시작했을 뿐이다. 훈기는 부모와는 다르게 입이 작아 퉁퉁 불어 있던 내 젖꼭지를 입에 잘 넣지 못했다(지금도 밥을 먹일 때면 숟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눌러 입을 벌려주어야 한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내 사정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완분 아기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의 사정 중 꽤 흔한 하나일 것이다.
14개월이 된 훈기는 진작 분유를 끊었지만 아직 젖병을 떼지는 못했다. 젖병에 애착이 있는지 젖병만 보면 빨리 내놓으라며 서럽게 운다. 그런 아이가 어쩌다 내 가슴을 보게 되면 낯선 사람 얼굴을 보듯 빤히 들여다보기만 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와 조심스럽게 젖꼭지를 누르고, 돌리고, 잡아당겨 본다.
훈기는 여전히 손에 잡히는 것들을 입에 넣어보곤 하는데, 내 젖을 입에 넣어 볼 생각은 안 드나 보다.
#툴리 #왓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