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시를 통해 본 사랑의 물리학, 드라마 <도깨비>, 공유 낭독

by 맑은눈빛연어

초등 때는 고퀼리티 게임에 푹 빠져 수많은 시간들을 보냈던 아이.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와 만나면서 게임과는 굿바이 하더니 이젠 드라마에 푹 빠졌다. 아들 못지않게 드라마 중독자인 나는 어부지리로 옛날 드라마에 같이 빠진다. 귤, 찐 고구마, 살짝 데운 우유까지 예쁜 쟁반에 담아 아이 입에 넣어줘 가며 드라마 속으로 함께 다이빙한다.


요즘 아이가 푹 빠진 드라마는 <도깨비>. 2017년 방영된 웰메이드 드라마다. 특히, 키다리 아저씨 같은 기럭지에 목소리마저 죽여주는 배우 공유의 깊은 슬픔이 감도는 눈빛 연기와 시 낭송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 그 자체다. 짧은 겨울 방학을 마친 아이는 개학을 했다. 하지만, 매일 2-3교시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탓에, 잠시 학교를 방문(?) 하고 오는 것 같다.


1학년 내내 제출해야 했던 등산 보고서, 과목별 독후감 제출 확인, 봉사 활동 및 기타 성적 체크까지. 선생님들은 정신없이 성적 처리하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각자의 성적과 DCC(대원 품성 기준제) 점수를 세팅하기 위해 바쁘다.


극 I형인 아이에게 웰메이드 드라마 시청은 어쩌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학교 커리큘럼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휴식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을 들었을 때 묘하게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드라마 <도깨비> 중에서,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 공유 낭독




첫사랑.

문득 시곗바늘은 거꾸로 팽글팽글 속도를 내며 돌아간다. 신기하다.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던 그 아이의 이름은 희미해졌는데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와 내가 첫사랑이라고 고백했던 또 다른 아이. 두 사람의 이름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항상 내가 바라보았던 첫사랑의 아련함은 뒷모습이었지만, 항상 나만 바라보았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안타까운 얼굴 표정이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라고 했던가. 과학에 대해서만큼 혼자서 한 권의 노트를 다 채울 만큼 이론에 빠삭한 아이는 한참을 생각하는 나보다 이 시를 순식간에 해석해 낸다. “질량의 크기가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 이유는 각 물질마다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지. 고로, 쪼그만 여자애가 천년을 훌쩍 넘게 산 도깨비를 끌어당겼군.”


문득 크기와 부피와 상관없이 나를 어마어마하게 끌어당기는 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어느새 나보다 더 커버린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릴 적엔 사과미소로 함박 웃었던 아이가 사춘기인 지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웃음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andrew-neel-JBfdCFeRDeQ-unsplash.jpg?type=w773 사진: Unsplash의Andrew Neel



엄마들의 마음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뉴턴의 사과는 바로 아이의 성장일 것이다.


뉴턴의 첫 번째 사과는 아이가 첫걸음을 뗄 때 주었던 환희와 기쁨이었다면, 두 번째 사과는 각자 다른 시기에 툭- 하고 굴러 떨어진다. 특히, 가장 강력하게 쿵~쿵쿵하고 사과들이 폭격처럼 떨어지는 때가 바로 사춘기다. 이때 수없이 많은 아이들은 '아프고 혹독한' 성장을 하고 엄마도 그 시기를 함께 하며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부모가 되어간다.


아이가 성장한 만큼 엄마의 성숙도 비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이의 '성공'이 엄마의 성공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김인육의 시 '사랑의 물리학'을 읽으며, 문득 엄마인 나와 아이와의 관계를 물리학에 빗대여 바라보게 된다.


부디 내가 아이의 성장을 함께 아파하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성숙한 엄마이길 소망해 본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한 뼘 더 자유롭고 아름다운 '나'로 눈부시길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명의 중심은 뇌일까,심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