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감정노동자입니다

읽고, 쓰고, 걸으며 감정을 다스리는 엄마로 성장했다

by 맑은눈빛연어

“오늘은… 또 어떤 기분으로 들어올까?”


나는 매일 아이의 등하교 라이딩을 하는 엄마다.

아이가 하교하면서 차 문을 열고 타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조심스럽게 준비한다.

처음 내게 건내는 말, 무표정한 얼굴에 잠깐 스치는 찡그림,

미리 준비한 간식을 받으며 '고마워' 라는

말을 하는지 안하는지 여부까지 …

그 하루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작지만 분명하다.


아이는 사춘기다.

만 15세, ISTJ 성향이 강한 아들은 겉으로 튀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고

용의단정하며 정돈된 스타일이다. 동시에 매우 논리적이고 판단이 앞선다.

그러나,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부분은 다소 낮으며

원칙적이라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무척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시야가 무척 넓어 주변 환경에

굉장히 예민하고 소식이 빠른 아이다.


그런 아이는 자타공인 학교에서는 모범생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정말 다르다.

일단, 날이 선 말들을 툭툭 던진다.

밖에서는 감정을 꽁꽁 눌러 담고,

집에 들어오면 마치 뚜껑 열린 압력밥솥처럼 끓어오른다.

그 대상은 늘 ‘엄마’인 나였다.


어떤 날은, 내가 그저 조용히 최근 지어온 한약을 담은 컵을 건네면
“아 진짜… 엄마는 왜 맨날 그래?”
툭, 날아온 말이 가슴을 찌른다. 그 순간 나는 얼어붙는다.

아들의 감정을 받아내는 나는 점점 하나의 ‘역할’이 되어간다.
“엄마는 내 편이니까, 이 정도 말해도 되잖아.”
“엄마니까 받아줘야지.”

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엄마이기 전에 한 명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감정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것이다』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말한다.


“가족이니까 상처 줘도 괜찮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감정을 다뤄야 한다.”

그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마음 깊은 곳이 묵직하게 흔들렸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감춰왔던가.


집 안에서 쌓여가는 감정의 먼지들을 어떻게든 치우기 위해, 나는 방으로 들어간다.
책을 펼치고 글을 쓰고, 때로는 운동화를 신고 집 밖으로 나간다.

고요한 거리, 반복되는 발걸음,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의 감촉,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의 모습까지...
그 모든 것들은 내 감정을 조금씩 어루만져주는 것들이다.


산책은 내 마음의 해열제이고, 독서는 감정의 정수기다.
글쓰기는 위태위태했던 그날의 감정을 연착륙시켜주는 나만의 방식이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상처받는 걸까?'
'오늘 아이의 말 속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그 질문들을 스스로 묻고, 천천히 되짚어가며 글로 써 내려가다보면
어느새 상처는 언어로 덮이고, 감정은 문장으로 정리된다.


이전엔 몰랐다.


아이의 말 한 마디에 그렇게까지 반응하는 내가 왜 이토록 힘든지.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안다.


청소년기의 뇌는 여전히 미완성이고,

감정을 조절하는 전전두엽은 서서히 자라는 중이라는 것을.
사춘기는 그 자체가 혼돈이며,

아이는 지금 '나'라는 존재를 분리해가는 고된 여정을 걷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그 여정에 함께 걷는 사람이다.


아이와 부딪치고,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매일의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엄마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안다.

감정을 다룰 수 있어야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감정이란 건 억누를 대상이 아니라,

돌보고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징검다리라는 사실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읽고, 걷고, 되새긴다.

엄마도 감정 노동자라는 이 말이, 내 삶에 점점 더 진실하게 와 닿는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이 시절의 내가 조용히 떠오를지도 모른다.

묵묵히 감정을 정리하던,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이.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