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매일 나 자신을 치유하는 한 여성의 기록하는 삶
전업주부가 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습니다.
14년 간의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때만 해도 그저 '아이를 잘 키우고, 집안을 잘 돌보는 것'이 새로운 직업이라고 믿었습니다.
늘 한밤중에 귀가하는 남편과 많은 시간을 못 보냈어도 지극히 사랑하는 내 동반자이고
배 속 아기는 내 삶에 넝쿨째 온 축복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아무리 바쁘게 하루를 채워도,
내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로만 기억할수록
나는 흐릿한 날씨처럼 점점 낮아졌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으며,
나는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물음의 끝에서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10년 가까이 직장인 독서 모임을 리드했던 저는
아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다시 엄마들의 독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 모임이 벌써 8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책을 읽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로 발전했습니다.
아이가 어릴 적엔 글을 쓸 엄두로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가 잠든 밤,
짧은 문장 한 줄을 써보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오늘 느낀 감정,
아이가 한 말,
내 마음을 울린 한 문장.
그렇게 매일 한 줄, 한 문장을 쓰다 보니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라는 사람이 흐릿한 안갯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죠.
글쓰기는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나를 다시 불러내는 일이었습니다.
꽤 많은 나날들을 '엄마'라는
가장 어려운 직업에 적응하느라
좌충우돌하는 나를 다독이듯 말을 걸었고,
어느 날은 '딸'이기에 느꼈던 서운함을 글로 풀어냈습니다.
또 어떤 날은 '아내이자 맏며느리'라는
역할에 눌린 감정을 끄집어내 쓰면서
몇 번을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웠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 글들 속에는 내가 있었고,
나의 슬픔과 기쁨,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치유와 회복이 있었습니다.
전업주부의 삶은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가득합니다.
직장 다니던 시절에는 최우수 직원이라는 자부심으로
매달 통장에 입금된 월급을 보며
나를 위한 당당한 투자와 소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평가는커녕 인식조차 되지 않는
무형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쓸모'와 '존재'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글로 써보니,
그 안에는 너무도 많은 보석같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냈는지,
얼마나 많이 사랑했고, 인내했고,
또 수많은 실수 가운데
기필코 한 계단 올라서는 성장을
이루어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글 쓰는 주부입니다>는 작년 초,
전자책의 제목으로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때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성장'에 한하여
2주 만에 글을 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쓰기 시작한
<나는 여전히 글 쓰는 주부입니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게 써 보려고 합니다.
'엄마'로 살아가며 느낀 복잡한 감정들,
'딸'로서 품어온 가족에 대한 오래된 감정들,
'아내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삶의 무게들,
그리고 그 모든 역할과 관계를 지나
마침내 '나다운 나'로 살아가고자 애쓴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쓰며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나는 엄마이고, 딸이고, 아내이자 며느리지만... 그보다 먼저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나와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을 것입니다.
바쁘고 고된 일상 속에서 문득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떠올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이 책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도 당신을 써보세요.
화려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문장 안에 분명히
'당신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니까요.
글쓰기는 나를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매일 기록하며 깨닫게 되었고,
지금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 글은 나의 기록이자,
지금도 글을 쓰며 나를 지켜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보내는 응원입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많이 쓸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 자체로 쓸모가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이미 수많은 이야기들이
별처럼 무수히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2025년 봄
글 쓰는 주부, 최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