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나’를 발견하는 하프타임이 필요한 때

by 맑은눈빛연어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

-르네 데카르트


나는 18년 차 전업주부다. 이전에는 14년간 다양한 커리어로 살면서 사회에서 인정받아온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늦깎이 결혼 후 3년 차쯤 아이를 갖기 위해 나는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사실 프로 주부로 살아보겠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늘 자정 무렵 퇴근하는 바쁜 남편 대신 혼자서 씩씩하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도 척척 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출산 후 심한 산후우울증을 겪었고 급격하게 무너진 체력으로 육아마저도 좌충우돌했다. 또한 어려운 시부모님과의 관계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몹시 불편했다.


'그냥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물음표를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힘들 때마다 나를 지탱해 주었던 책이 생각났다. 책벌레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책을 달고 살았던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온전히 독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초보엄마라는 불안감으로 주로 육아 서적을 읽었고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엄마들과의 관계에 매몰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 해결은 나의 몫이었다. 그럴 때마다 직장 다니던 시절,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책을 읽으며 고비를 넘겼던 때를 떠올렸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독서임을 그때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느 햇살 가득했던 오후. 집을 나섰다. 아무 생각 없이 떠나는 나의 소소한 산책길의 끝에는 새로 오픈한 서점이 있었다. 온갖 중고 책방들이 앞 다투어 진열해 놓은 책을 천천히 구경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 제목은 <가고 싶은 길을 가라>였다. 제목에 이끌려 어느새 내 손은 책을 꺼내 들고 목차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내면의 나와 마주하기'라는 목차의 첫 번째 장의 제목에 끌려 1,5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책을 샀다. 책을 읽으며 꽤 오랫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나’를 먼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늘 아이와 남편, 그리고 부모님을 챙기는 일로 가득 채워진 나의 시간들을 쪼개어 온전히 나만을 챙기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결심했다. 정신없이 저글링 되는 일상 가운데 그나마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의 가성비를 높이는 방법은 역시 독서였다. 독서할 때 나의 시계는 잠시 멈췄고,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습관처럼 길을 나서면 도착하는 곳 서점에서 밥 버포트가 쓴 책 <하프타임>을 발견했다.


'하프타임'이란 축구나 농구, 미식축구와 같은 시간제 경기에서 경기의 전반과 후반, 혹은 쿼터 사이에 있는 휴식 시간을 말한다. 이때 중요한 작전이 감독과 선수 사이에 이루어지며, 혹 지고 있는 팀이 있다면 이때 전술과 팀을 재정비하는 아주 유용한 시간이기도 하다. 짧지만 말이다.


여러분에게 하프타임은 언제인가? 내게 하프 타임은 정기적으로 보직 이동이 있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들이 어느새 10살이 조금 넘어 사춘기로 접어들 즈음 내 인생의 '작전타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펼쳐 읽는 동안 작가로부터 '넌 지금 작전타임이 필요해. 내가 코치해 줄게'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매일 시간을 쪼개 틈틈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타인의 도움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을 조금씩 줄여 나갈 수 있었다. 대신 책을 쓴 작가, 때로는 책 속 인물들과 대화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서를 매일 꾸준히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면서 멋진 곳을 여행하고 옆집 엄마들과 만나 의미 없는 수다를 떠는 것보다 책과 데이트하는 시간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나를 발견하는 객관적 시선을 선물해 주었고,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책이 나를 비난하거나 상처 주지 않으면서 나의 내면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며 나를 객관화시키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독서를 통해 나는 어느새 지혜로운 엄마, 현명한 아내, 그리고 기특한 딸로 서서히 변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