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by 최흥자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 최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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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악(惡)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지만 청소년기에는 더 큰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학생이라면 ‘학교’라는 공간은 그의 전부가 될 수 있다. 그런 공간에서 ‘따돌림’, ‘놀림’, ‘면박’, ‘욕설’, ‘망신주기’등 참기 힘든 모욕을 경험한다면 걷잡을 수 없이 성격이 변할 것이다. 그를 참아내는 방법을 아무리 터득한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특이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이야말로 활화산이 되어 자제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한 대상자 모두 살인자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힘듦이라는 것을 안다. 이 책을 읽으며 ‘아들’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인자로서 타인의 귀중한 생명도 앗아가고 자신의 생명도 버려야 했던 ‘딜런’의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했다. ‘딜런’이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기까지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기에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딜런’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붙잡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찾아가는 엄마의 참담함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나 또한 피해자의 엄마로서 겪었던 마음 아픈 사건이 있다.

그때 딸아이에게 썼던 편지 한 통을 소개하려 한다.


그해 가을!, 그날도 하늘이 참 예쁘고 맑고 고요했다. 적어도 딸아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우정(友情)의 터널을 지나는 딸에게. / 최흥자

거리엔 쏟아놓은 낙엽들이 스산한 바람에 이리저리 춤을 추고, 숨이 멎은 듯한 적막한 공간 속엔 짹~깍 짹~깍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조용한 밤. 엄마는 지금 너의 책상에 앉아 책꽂이에 꽂혀있는 수학, 영어, 과학, 사회, 영어 단어ㆍ숙어, 문법, 독해, 국어, 기술·가정... 등 네가 항상 함께 하는 책들에게 한 권씩 한 권씩 눈길을 주며 너를 보듯 책들을 보고 있다. 이 많은 책 속에는 네가 희망(希望) 하는 미래가 숨어있다지만 지금 너에게는 그런 박제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얼어붙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친구 하나가 더 소중함을 알게 했던 참으로 잔인한 달 시월을 생각해 본다.

계절은 하나의 결실을 거두고, 나뭇잎들은 제 본연의 색으로 곱게 물들며 시월의 축제 속에 깊어가던 마지막 밤. 내게 빛을 가리고 어둠 속을 헤매게 하는 절망의 도전장을 던지며 바로 눈앞에 펼쳐질 현실의 암담함, 난감함, 황당함을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으랴. 너의 말 한마디에 내 빛이 사라지던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늦은 열한시! 딩~동 딩~동... 초인종을 연거푸 눌러대는 너의 조급함에 현관문을 열었지.

"다녀왔습니다." 늘 들어오던 활기찬 인사에 반갑게 대답을 하고 간식을 주려 할 때, 넌 컴퓨터를 켜면서 절망의 벽에 부딪히는 한숨 섞인 소리로 "엄마 나 전학하면 안돼?"라고 물었지, 뜻하지 않은 네 말에 "무슨 소리야?.. 전학은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친구하고 안 좋은 일 있었니?"... 네가 대답할 여유도 없이 연거푸 물었지, 그러자 넌 심호흡하며 침통한 표정으로 "친구들이 날 싫어해."라며 절대 엄마 앞에서 보이지 않던 눈물을 보였어, 그때 엄마는 네가 마음이 많이 상해 있음을 알았다만 태연한 척 "왜 싫어하는데?", "넌 이유를 알잖아?", 차근차근 묻는 나에게 "응.. 저번에 체육대회 때 일인데... 어쩌고저쩌고해서 사회 선생님 수업을 안 듣는다고 아이들이 의견을 모았는데, 난 솔직히 몇몇 아이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수업을 손해 보잖아. 그래서 선생님께 그냥 수업하시라고 편지를 쓰는데, 옆 짝꿍이 보고 수업 듣지 말자고 뭉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서 날 보고 "배신자"래. 그래서 욕하고, 친구하고도 놀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내 책상을 발로 툭툭 차고, 손으로 두드리고 그래, 그래서 학교 가기 정말 싫어, 내일은 아프다 하고 학교 안 가면 안 돼?".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에 머리가 어질하며,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하는 말의 뜻인즉 TV에서나, 말로 만 듣던 그 "집단따돌림(왕따)"를 네가 당하는 거라니, 참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히며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되더구나. 상급학교의 낯섦에서 벗어나 이제 학교생활이 재미있다고 무척이나 좋아하며 뭐든지 적극적인 네가 지금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더구나, 더구나 이번 중간고사 시험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었다고 기분이 하늘 닿을 만큼 좋아 있던 네가, 어쩐지 요 며칠 사이 얼굴에 그림자가 보이더니만 이제야 속내를 이야기하다니, 그동안 얼마나 가슴 앓이를 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프더구나. 그리고 이어 네가 웃으면서 남의 이야기하듯 "근데.. 엄마!, 그 애들이 모임 이름도 지었어"...."이상협" 이라고.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의미에 그 모임의 본뜻을 묻는 나에게 네가 말해주었지 "이○○살인 협회". 쓸쓸한 웃음 지으며 슬쩍 한 말에 엄마는 그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친구에게 "살인(殺人)"이란 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내 안의 모든 피(血)는 역류(逆流) 하고, 이런저런 불길한 생각들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음에 밤을 뿌옇게 지새며 마음 가득 어둠을 안고 십일월 초하루 새날을 절망 속에 맞이해야 했단다.

그런 이유로 학교 가기 싫다는 너를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한다고 달래서 보내놓고,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학교를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무심한 낙엽만이 네 교정에 뒹굴더구나. 내 마음처럼 바람을 타고 솟아올랐다가는 허공을 돌다 이내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더라 엄마의 착잡한 마음같이 말이다. 내 머릿속은 풀어진 실타래처럼 생각이 얽히며 이 현실의 난관(難關)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어떻게 매듭을 풀어야 하나?, 참으로 막막하더라 그리고 울분이 터지더구나. 이 황당한 네 친구들 때문에.

우정(友情)의 터널을 지나는 딸아!

세상은 너 혼자만의 뜻대로 살아짐이 아님을 이 사건을 통하여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 너의 나이에는 판단의 옳고 그름에 따라 네 의견을 분명히 해야 함을 안다. 비록 다른 친구들이 Yes 할 때 너의 기준에 옳지 않음이라면 NO 할 수 있는 것도 용기라는 것. 그리하여 지금처럼 조금의 시련이 온다 해도 굳건히 이겨나갈 수 있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항상 말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라 엄마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였음에도, 정작 너에게 이런 뜻하지 않은 친구들로부터의 소외됨을 보면서 엄마의 판단도 순간 흐려지더구나. 어느 것이 진정한 옳고 그름인지... 하물며 엄마도 이렇게 혼란스러울진대 너는 오죽했으랴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파지는구나.

딸아!,

네가 희망하는 전학이라는 것도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다. 이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과 관계가 회복된 다음 웃으며 헤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일 때, 최후의 선택으로 생각해 봐야 함이라 엄마는 생각한다. 지금 전학을 하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한 방편일뿐더러, 친구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갈 때 네가 자신감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온 뒤의 땅이 더 굳어지고 단단해지며,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피어 나는 꽃들이 더 향기롭듯, 지금 이 갈등을 지혜롭게 헤쳐나가 친구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깊은 우정의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무서리 내린 가을이 깊어 칼날 같은 바람이 네 종아리를 훑고 지나가는 겨울이 바로 눈앞서 서성이는구나. 첫눈이 내릴 때의 흥분과 순수한 아름다움 같은 너의 학창 시절의 첫 단추인 지금 이 시간, 부디 아름답게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지금 네가 한 행동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음에 엄마는 큰 박수를 보내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내 마음은 소금에 절인 것 같다만, 어디서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 있는 나의 딸이었음에 네가 무척이나 대견스럽다.

힘내라 나의 딸아. 그리고 사랑한다. 2002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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