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소녀상’에서 인권을 읽다.
만남에는 약속된 만남도 있지만, 우연한 만남도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우연한 만남이 더 의미 있고, 반가울 때도 있지만 아리고 슬픈 만남도 있는 것 같다. 여리고 왜소한 소녀상, 순박한 얼굴 속에 어딘지 모를 슬픔이 어리어 있고, 뜯겨진 단발머리 와 양말도 신지 못한 맨발로 박재처럼 앉아 있는 위안부 소녀상을 만난 것은 일산 호수공원 옆이었다.
TV프로그램 속에 멋진 모습으로 살짝 비치던 일산의 호수 공원을 딸아이와 방문했다. 신도시의 말끔한 모습이 잘 차려입은 신사처럼 멋진 도시, 그곳에서 만난 위안부 소녀상은 내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인 듯, 큰언니의 모습인 듯,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간직하고 회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아니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삶의 궤적 속에 나라 잃은 슬픔과 억울함이 가슴에 재가 되어 서리서리 박혀있는 사람들. 국가라는 울타리가 제 역할을 못하던 그 시절에 인권의 사각지대, 아니 사람의 기본적 권리에 대해 말조차 올릴 수 없었던 전쟁의 미치광이한데 빼앗겨 버린 청춘, 역사의 희생양 된 소녀들이다.
빈 의자에 살포시 앉아 소녀상을 들여다봤다. 무수한 언어를 담고 있는 눈, 낮은 코, 도톰한 입술, 꼭 동여맨 치마저고리, 다소곳이 모은 두 손, 한쪽 발을 땅에 딛지 못한 채 맨발로 할머니의 그림자를 지고 앉아 있는 소녀상이었다.
그들이 진실을 말하기 위해 온몸으로 소리칠 때 나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처럼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몸소 겪은 사실도 아니고, 내 주변에 ‘소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겨졌던 소녀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감당해야 했던 아픔이 얼마나 컸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소녀상 앞에서 부끄럽게 느껴졌다.
가난이 죄가 되던 시절, 감언이설에 속아 억지로 따라나선 길,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몸서리 쳐지는 시간들이었을까?. 전쟁의 전리품 취급을 당하면서도 차마 죽을 수 없었던 모진 목숨으로 사람으로서 겪을 수 없는 참담한 인권 상실의 현장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삶의 끈을 바투 쥐고 용기를 냈던 소녀들이다. 이제는 그 진실을 말해줄 소녀들이 자꾸만 줄어드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만행은 지금도 그 탐욕의 줄기를 놓지 못하고 망언으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만난 소녀상, 누군가 그의 목에 감아둔 스카프 한 장, 보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안쓰럽고 아팠으면 살아있는 소녀를 만나듯 정 하나를 남겨 두었을까 생각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정담을 나누며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지고 있는 호숫가를 딸아이와 손을 잡고 거닐었다. 호수의 표면을 살포시 흔들며 바람이 불어왔다. 내 머릿속 생각들이 ‘소녀상’의 잔상으로 호수처럼 흔들렸다.
자기반성이 없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경제적 부를 이루고 선진국의 대열에 서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진정 그들이 세계를 이끌고 가는 지도국의 입장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의 진실 앞에 철저하게 반성하고, 진정 어린 사과로서 ‘소녀’들을 비롯한 전쟁의 피해자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덕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진실의 힘은 위대하다. 그들이 반인도적 전쟁범죄에 대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의 교훈을 올바르게 가르침으로써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얼른 집에 가고 싶어졌다.
대전에도 소녀상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스치듯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내 삶의 중심에서 관심조차 없었던 ‘인권’, 그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라고 한다. 이제는 그 당연한 권리를 침해당하는 일이 없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소녀’들이 당해야 했던 인권침해를 알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후세에 전달하는 일에도 깊은 관심과 동참하리라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