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인권 식당

by 최흥자

심야 인권 식당을 읽고 / 최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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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만난 ‘사람’들처럼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 첫 번째는

베트남에서 결혼하여 이주한 여성이었다. 남편과는 20살 차이가 나는 어린 신부였다.

만삭의 그를 만난 것은 그의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고였다. 사회서비스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바우처가 선정되었는데 어느 기관에서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정된 통지문을 통해 사무실 전화번호를 얻었다 했다. 주소를 들고 집으로 찾아갔다.

초췌한 모습, 입덧으로 먹지도 못하여 깡마른 그녀가 있었다. 내 딸아이 보다 한 살 어린 신부로 간신히 의사소통이 이뤄질 뿐이었다. 안쓰러움이 더 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지리도 몰라서 외출은 생각도 못 하고 온종일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정기 검진은 받았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고향은 언제 다녀왔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손발을 다 사용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입으로 쏟아내는 말보다 진한 언어가 마음의 언어인가 보다. 마음을 더하여 나누었던 서투른 대화에 그는 눈물을 보였다.

우리 말을 배우고 싶었지만 남편의 허락 없이는 대문 밖을 나설 수 없었다 했다.

그렇다 보니 말이 늘지 않고, 우리 문화도 배우지 못해서 늘 갈등이 있다고 했다.

남편의 폭력적 언어와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그를 병들게 했던 것 같다.

그에게 마음을 더하여 주고 정을 나누어 주어 건강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함게 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6개월을 만났었다. 이렇게 이주민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별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로 만난 특별한 어르신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어르신 댁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들어 주다 보니 말하기보다는 듣기가 편한 사람이다. 그러한 방문 속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고 계신 어르신을 만났다.

작가가 수치심 없이 공공장소에 나타날 수 있는 권리로 표현한 성소수자, 그들의 고통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어서도 여자로 살 수밖에 없었던 어르신.

그 어르신은 분명 여자 어르신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시문을 전달하면서 주민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특별하게 생각됐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난 아직도 성 소수자들에 대해서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다.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내 삶에서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 없는 생명력 없는 단어 ‘성소수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는 아마도 인권에 앞서 성 소수자를 논할 수 없는 가정과 여자들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다름을 이해하기보다는 성 역할의 고착화 교육을 받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고 살아온 삶의 이력 때문인지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랬던 같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되고 하는 편견의 틀을 깨지 못하고 우매한 교육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은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한다. 아주 옛날부터 지적되어 왔던 남성과 여성 사이의 문제는 비록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되듯,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라고 여기게 된다’는 것처럼 그러한 사회 속에서 자라왔다. 이제 우리 의식도 많이 변했다.

여성이 대통령을 하는 시대에 살았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유리천정이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여자는 밖에서 일을 하더라도 집안일을 다 해야 하고, 남자는 퇴근해서 TV 리모컨이나 만지고 있는, 가사 일에는 전혀 무감각한 기성세대들이 많다.

우리 가정 또한 예외일 수 없고, 주변에 그렇게 생각하거나 실제로 그런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인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

우리 기성세대에게는 참으로 어렵고 불편스러운 단어다.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단어로 기억되어 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특히 남성들은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현재의 일상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권리를 주장하다 보니 자신들의 영역이 좁아든다고 생각을 하며,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 성가신 존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이러한 인식은 인권에 대한 오해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어렵게 생각된 인권을 대화를 하듯 쉽게 풀어 놓은 책, ‘인권’의 시작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인권’ 어렵고 생경하게 들리던 말이 이 책을 읽으면서 편안하게 다가왔고, 인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했음을 자인한다. 그리고 '지금보다 좀 더 공정한 세상을, 스스로에게 좀 더 진실함으로써 좀 더 행복해진 사람들과 좀 더 행복해진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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