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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키코치 Nov 01. 2021

아이가 100명이면 100가지 육아법이 있다.


아이가 100명이면 100가지 육아법이 있다.


얜 누굴 닮았을까? 둘째가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이 아이는 어떤 성품을 가진 아이인지 궁금했다. 엄마만 옆에 있으면 잘 먹고, 잘 노는 아이. 아이가 둘이 되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하지만 돌이 지나고부터  아이의 성격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 아이의 성품을 궁금해했을까? 우리 둘째는 너무나도 까칠하고, 감정적인 성격이었다.


큰 애는 원하는 게 명확했고, 그걸 들어주기만 하면 조용했는데, 둘째는 한 번 울기 시작하면 30분씩 울었다. 성질났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뭔데?’


큰 아이에게 쓰던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둘째니깐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오만함을 내려놓고 육아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그래, 한 배에서 태어났을 뿐 또 다른 인격체인데... 내가 공부해야지!



아이가 18개월이 되자 온몸에 아토피가 올라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려워서 긁는 아이 때문에 모든 걸 신경 써야 했다. 음식부터 몸에 바르는 것까지. 식탐이 남다른 아이가 음식 때문에 속상한 일이 없도록 가방 가득 좋아하는 떡과 과일을 들고 다녔지만 다른 아이들이 먹는 걸 먹고 싶어 하는 아이 때문에 늘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해산물과 잎채소가 맞지 않았던 아이는 지금도 멸치육수가 들어간 국물 요리와 배추김치를 멀리하고 있다. 배추김치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 학교에서 연락이 온다. 영양사 선생님과 상담해 보지 않겠냐고... ‘잎채소 알레르기’는 모두들 낯설어한다. 혹시 편식이 아닐까 의심도 받았다. 이럴 땐 상위 1%의 키를 가지고 있는 아이의 신체가 방폐막이 되어주었다. 김치 대신 깍두기를 잘 먹어서 편식시키는 부모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피할 수 있었다.


언니와 달리 인형과 옷, 역할 놀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둘째는 엄마가 되는 게 꿈이었고, 늘 미미인형을 등에 업고 다녀서 별명이 ‘미미 엄마’였다. 엄마의 화장품을 호시탐탐 노렸으며, 옷장에 있는 옷을 다 꺼내놓고 패션쇼하는 걸 즐겼다. 마음에 드는 옷이 없거나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밖에 나가 지 않고 계속 울었으며, 늘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남들이 먹는 것,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싶어 하는 욕심꾸러기.




남편과 나는 감성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아이의 이런 행동이 낯설고 버거웠다. 남편은 “옛말에 아비, 어미도 안 닮은 녀석이 태어난다더니 우리 집에 그런 아이가 태어났네!”라며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였다. 우리한테 없는 성향이니 함께 공부해 보자고...


부모, 자식도 성향이 맞아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나날이었다. 평소 내가 불편해서 피하는 성향을 다 가지고 태어난 이 아이는 사람에 대한 나의 편견을 버리고, 지경을 넓히라고 보내주신 아이 같았다.


‘아! 또 풀어야 하는 문제구나! 이번엔 감성적인 사람과 인간관계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나요?’ 하긴 나에게 또 다른 기업이 주어졌는데 호락호락할 리가 있겠는가?


마음을 굳게 먹고, ‘감정 카드’와 ‘공감 카드’를 이용해서 아이에게 다양한 감정과 공감의 언어를 전달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매일매일 전쟁과 같은 하루였고, 아이 때문에 화병이 올라와서 화도 내고, 싫은 소리도 하게 되었다. 이런 날은 아이에게 미안해서 밤에 엉엉 울다가 잠들었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커져야 아이를 품을 수 있을까? 난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자책이 이어지니 자존감도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시기에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둘째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고스란히 첫째에게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나를 낯선 모습으로 바라보던 큰 아이의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가끔은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불안해하기도 했다. 한 번은 큰 아이와 한 약속을 잊어서 다음으로 미루었는데 외할머니 댁에 있던 아이가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가 이상해요. 나랑 약속한 걸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데... 요즘은 화도 자주 내고...”라며.


이때는 정말 나도 같이 울고 싶었다. 나도 힘들어 죽겠다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고, 아파도 맘 편히 아플 수 없는 게 바로 엄마의 자리였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텨야 살아갈 수 있었다.


이 시절에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다독이고 마음을 알아채는 법을 알았더라면 훨씬 수월했을 것 같다. 아이의 마음만 들여다보느라 내 마음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아이를 위한 공부는 악착같이 했지만 나를 위한 공부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감과 위로는 아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인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몸을 관리하게 위해서는 끊임없이 음식을 주고, 운동도 하면서 마음을 돌보는 일에는 왜 이리 소홀했던 것인지......


엄마의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아이의 마음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음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눈을 뜨면 나의 마음에 이름을 붙여주고 컨디션 레벨을 1부터 10까지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나 알기' 시간을 가진 후부터는 '너 알기'가 쉬워졌다. 내 마음의 창이 넓어지니 아이를 품을 수 있는 너른 마음이 생겼다.


이 세상에서 내 아이를 가장 잘 알아주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엄마이다. 아이들 각자의 특성에 맞는 육아법을 잘 찾아내기 위해서는 엄마 마음부터 잘 챙겨야 한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에 맞는 이름을 붙여주며 한 번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은 흩어지고, 긍정적인 감정은 증폭된다.


아이가 100명이면 100개의 육아법이 있듯 엄마가 100명이면 100개의 양육법이 있는 것이다.시선을 남이 아닌 나에게로 돌리는 순간부터 나의 육아는 수월하고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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