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찾아온 마음의 비바람 앞에서, 나는 매번 처음처럼 멈춘다
슬럼프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패턴도 없다.
전조 증상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어느 날,
“나 왜 이러지?”라는 말이 입 안에서 뱅뱅 맴도는 순간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글도 안 써지고,
SNS도 멀게만 느껴지고,
가만히 있어도 피곤하다.
나는 이런 날이 올 때마다
어떤 루틴으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
명상? 산책? 잠?
효과는 있는데, 그때그때 다르다.
실패 확률도 그때그때 다르다.
무엇보다 슬럼프는
늘 내 ‘가장 잘하던 영역’을 건드리고 간다.
글이 안 써지고,
강의가 하기 싫고,
사람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진다.
그러면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조용히 속삭인다.
“너, 이제 그만해야 하는 거 아냐?”
“그때가 전성기였나 봐.”
“이젠 별거 아닌 거 같아.”
슬럼프가 무서운 건
일을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을 못 믿게 만든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요즘 슬럼프를 견디는 법을 새로 배우는 중이다.
‘이걸 이겨내는 기술’이 아니라,
‘이것과 함께 버티는 자세’ 같은 것.
견디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눕기도 하고,
몰아내기보다 이름 붙여 부르기도 하고.
“아, 너 또 왔구나, 슬럼프씨.”
이렇게 말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조금 느슨해진다.
어쩌면 슬럼프는
내가 ‘나를 너무 열심히 써먹은 날’에게 찾아오는
몸과 마음의 퇴근 요청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아직,
퇴근하는 법도 잘 못 배운 사람이라
이 요청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오늘도 나는 답을 모르지만,
이렇게 쓰고 있는 걸 보면
아예 못 견디는 건 아닌 것 같다.
슬럼프를 견디는 법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씩 버티며 적응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