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대화의 민주주의가 부재하거나 빈곤한 채로 과연 성인지감수성이 살아날 수 있을까?
성차별사회,성차별문화를 성평등사회와 문화로 전환하는 재구성의 과정은 오해와 갈등의 지뢰밭이다.
어디까지가 폭력이고 어디까지가 오해갈등인가를 판단하는 자생역량은 어떻게 가능한가?
'성인지감수성'이란 용어는 젠더차이(차별)에 근거하여 각각의 인간들이 성장과정에서 서로의 언어와 욕망,생존생활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발생하고, 다르게 작용하는가를 이해하는 감성과 인지력을 통상 의미하는 것이지만,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것의 의미는 권력관계의 약자인 여성의 처지와 여성의 인지판단의 방식,그 과정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감수성이라는 의미로 일방적으로 경사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후자의 것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도 전자의 성인지감수성을 촉발시키고 활성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수준에서 일반적 약자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지라도 오해와 갈등, 폭력의 맥락은 구체적으로 해석되고 소통되어야 할 과제이기때문이다.
문제는 존중과 대화의 기반이 무너지고 모든 상황들을 대립과 분쟁으로 이해하면서 집단역학에 기반하여 사법적으로 정치적으로만 정리하려 할 때 과연 우리사회가 성평등사회,성평등문화로 진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존중과 대화의 민주주의가 부재하거나 빈곤한 채, 또 그것을 포기한 채로 과연 진정한 성인지감수성이 살아날 수 있을까?
중국의 문화혁명처럼 권력관계를 역전시키고(권력의 맛을 보여주고~), 다음 단계로 계몽과 교화에 의거 사회를 바꾸어내겠다는 것이 과연 지금의 페미니즘전략인가?
모두들 손을 놓고 있다.